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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재는 조선과 근대 학문 맥 잇는 월곡의숙의 출발 장소
  • 기사등록 2020-05-16 16:21:47
  • 기사수정 2020-05-17 12: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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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통 강학 장소인 삼지재 서계(三芝齋 書契)와 근대 학문의 출발지인 월곡의숙(月谷義塾)의 의미를 찾을 의미로운 건물이 복원돼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 중기 때부터 제주 양씨 문중이 지켜온 건물 삼지재(三芝齋복원이다삼지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에 있다.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15호이다지난 2003년 12월 2일 지정됐다



삼지재 서계(三芝齋 書契)

삼지재 서계는 월곡의숙의 전신이다그 역사는 무려 330여 년 전인 1696년으로 올라간다

삼지재 서계는 1696년 제주양씨 학포공 양팽손의 7대손인 양경하석하익하기하택하복하태하 등 7명이 주도했다


이곳에서 공부했던 자신들의 기억을 표본삼아 이 고장 인재를 키우겠다는 뜻으로 삼지재(三芝齋서계(書契)를 조직한다삼지재 서계는 훗날 1921년 월곡의숙으로 또 도곡중앙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공부한 인물들이 많다. 그 가운데 공부에 열정을 보인 이가 있다그 표본적인 한 사람이 양진영(1778~1860)이다자신이 죽기 1년 전인 72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자신의 호를 스스로 만희(晩羲)만희재(晩羲齋)라 했다


할아버지는 양택한(梁宅漢)이고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며어머니는 진주김씨(晋州金氏)로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양진영은 쌍봉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806년 화순에서 실시한 감시에서 수석을 차지 했다. 1809년 향시에서 합격했으나 그  후 여러 번 과거에 응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다가 1859(철종 10) 그가 죽기 1년 전인 72세 때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4세에 다른 사람이 글 읽는 것을 듣고 능히 해독하였다고 하며, 6세에는 8(八卦)와 6(六甲)을 외우고 9세에는 장자방(張子房)과 공명(孔明)의 우열을 논하는 글을 지었다고 한다.


양명학적은 학문체계를 가졌다. 제자백가(諸子百家)와 노불(노자와 불교)의 학설을 두루 섭렵하고특히 역()을 깊이 연구하여 대연추책(大衍推策)을 지었다. 1842년에는 호남 유생 기상풍(奇象豊), 정항순(鄭恒淳등 선비들과 선조인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양팽손(梁彭孫)의 직위를 추증하는 작시(爵諡)를 요청했고이어 1857년에는 종친 양은묵(梁殷默)과 고을선비 등과 함께 서울에 올라가 양팽손의 시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선비들과 향음례(鄕飮禮)를 이곳에서 많이 가졌으며 시작에도 매우 뛰어났다

최익현(崔益鉉등 많은 사림들이 양진영의 시를 찬탄하여 풍아명어좌해(風雅鳴於左海)’라고 평하였다저서로는 만희집(晩羲集)이 있고편서로는 경학지(經學志)가 있다.

 


월곡의숙(月谷義塾)

도곡중앙초등학교는 삼지재(三芝齋서계(書契)’와 이어 세워진 월곡의숙이 출발점이었다어릴적 자신들이 공부했던 삼지재를 수리하여 삼지재(三芝齋서계(書契)를 열었다육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다이 정신은 이어져 월곡의숙이 세워진다무너져 가는 나라를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敎育을 통한 운동으로 생각하여 이 고장 인재를 기르자는 기치아래 교육에 전념하여 이 고장 화순에 근대교육(近代敎育)의 토대를 마련했다


서계재산과 헌성금이 모아 1921년 근대학교를 모방한 2년제 사립 월곡의숙(月谷義塾)이 설립되었다


1921년 사립 월곡의숙을 시작으로 1934년에는 서계답 90두락을 팔아 학교부지 4천여 평과 학교림 및 교실 두 칸을 마련하여그해 4월 25일 도곡공립보통학교 부설 월곡간이학교로 인가받아 개교하였다


1938년 4월 1일 도곡공립심상소학교 부설 월곡간이학교로, 1941년 4월 1일 도곡공립국민학교부설 월곡간이학교로 있다가 1943년 3월 1일 도곡남공립국민학교로 분리 독립한 후 1945년 8월 15일 업무가 정지되고, 1945년 8월 16일 휴교되었다가 1946년 9월 24일 재개교(미군정 일반명령 제4)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 공포로 도곡남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이후 학구민들의 교명 변경을 수용하여 1965년 6월 11일 도곡중앙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1981년 3월 10일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고 1996년 3월 1일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도곡중앙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이 월곡의숙은 많은 이 고장 화순 인재를 배출했다졸업한 사람 중 한사람이 홍남순 변호사다홍 변호사는 1912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월곡의숙에서 공부하고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스무살에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상공학교을 졸업해 귀국, 37세의 나이로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월곡의숙의 뜻을 이어받은 그는 70년대 반독재 투쟁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광주.전남지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재야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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