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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동덕여대 교수)

B급 언어와 행동양식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감성 문화로 정착해가고 있다. B급 감성은 단순하고, 자극적이며, 야하다. 기존 질서를 벗어나 독특하고, 촌스럽지만 재미를 담은 콘텐츠다. 정형화된 질서에 반감을 표하는,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이나 풍자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핵심은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 주는 '재미'와 '황당함'이다.

최근 B급 감성 문화는 기업 마케팅 영역으로 활용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식음료, 가전, 화장품, 관광 상품 그리고 금융 상품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상품 콘셉트 중심의 광고에서 재미있는 콘텐츠로 소비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있다. 이 같은 B급 콘텐츠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를 대상으로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확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등 비대면 접촉이 강화되며 이러한 현상은 바이러스처럼 빠른 속도로 진화되고 전파된다. 코믹한 표현과 도를 넘는 욕설과 독설은 프로그램의 강점으로 인기를 더해간다.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고 일탈하는 모습과 과도한 언어적 비판, 공격이 방송 고객들에게는 새로운 유쾌ㆍ통쾌감으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자극적인 콘셉트로 소비자들을 당황시키고, 대중의 수준을 하향 평준화한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B급 문화가 단순히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도 있지만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새로운 세대에게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될 경우 부작용도 우려된다. B급 감성 문화의 한 부문인 아재 개그는 세대 간의 분파를 조장하고 기존 세대와 질서를 무시하는 경향성을 안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 사장, 학교 선생님 이름을 하대하며 공적인 자리에서 비하하고, 기존 가족 관계의 질서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권위와 질서를 거부하는 새로운 창조적 파괴로 이해되고 수용될 수도 있다. 허나 이런 현상들은 아재들에게 설명이나 이해를 시켜줄 조정의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아재들은 구닥다리이고 그래서 소통이 안 된다는 젊은 세대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B급 감성 문화가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보편적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도 이성적 공감대를 마련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수정과 개선의 여지도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들이 구세대의 책임이며 그들이 스스로 수용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이해보다는 서로 간의 조정과 소통이 이뤄지는 융합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튼 B급 감성이 새로운 주류 문화로 한국 사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다만 새로운 유행으로 지나갈 강한 바람 정도는 될 것임은 확실하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아재가 되기 때문이다.

언어적 파괴, 기존 질서의 붕괴가 재미있고 긍정적인지는 심사숙고하고 고민해봐야 한다. B급 감성 문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사회에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결핍적인 요인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젊은 친구들이 사고하고 발음하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들만의 소통 방식을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왜 공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필요하다. 우아하고 감동이 있는 감성보다 코믹하면서 약간은 저질스러운 B급 감성에 열광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신호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아시아경제신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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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8 18: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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