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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종교의 수명은 얼마나 남았을까?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이 오래된 질문이 다시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질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 21세기의 ‘괴질’에 대해서 종교는 그다지 할 일이 없다. 오히려 정책담당자들은 종교를 방역에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세계 각지에서 종교집회를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그 충격은 교리를 문자 그대로 철저히 지키라 요구하는 근본주의적 교파들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평생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 믿고 살아왔는데, 교회에 갈 수 없게 된 신자의 당혹감과 불안감은 내부자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교리적 구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교파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종교집회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은 “냉담자”가 많아 고민이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들의 신심이 더욱 약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경우, 종교는 없어도 된다. 특히 특정한 소속과 정기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제도종교’는 인간의 ‘종교적’ 수요를 채우는 데마저도 필수적이지 않다.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 등의 세계적 성공 때문에 우리는 제도종교를 기준으로 종교를 상상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극히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인류는 이런 “종교”들을 모르고 살았다.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에 의하면, 이른바 “신앙의 시대”라고 하는 저 유럽의 중세시대에조차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영국의 경우 1800년에 이르러서도 종교 소속을 가진 인구는 12%뿐이었다.

장기적인 종교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대부분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지역적인 “민속종교”를 통해 종교적 실천을 해왔다. 이런 종교에는 이름도 필요 없고, 소속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영적인 존재와의 소통이나 의례 집전을 맡는 전문가는 존재했지만, 이마저도 필수적이지 않았다. 20세기 한국 농촌의 여성들은 중요한 의례적 조치가 필요할 때에는 무당을 불렀지만, 일상적인 가정의례의 경우는 정화수를 떠놓거나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스스로 해결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망자를 추도하고, 복을 빌고, 나아가 신비적인 영적 체험을 하는 등의 종교적 수요들을 채우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근대 이래 이런 ‘골목상권’의 종교들은 쇠퇴 일로에 있다. 마치 재래시장과 동네슈퍼가 사라지고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들어선 것처럼 몇몇 ‘브랜드’를 앞세운 ‘프랜차이즈 종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표준화된 교리와 의례, 전문가들을 제공하는 종교 대기업들의 지구적 경쟁”이야말로 근현대 종교 상황을 묘사하기에 적절한 모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본주의적 종교라는 것도 자신들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고객 충성도’를 높여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프랜차이즈 종교의 한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종교적 수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형태의 종교는 얘기가 다르다. 제도종교가 전세계의 표준이 된 기간은 기껏해야 100여년 정도다. 많은 종교인구 조사에서는 “영적인 관심은 있지만 종교 소속은 없음”(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 항목을 설정하고 있으며, 이 인구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제도종교는 감염병과 같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도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물론 프랜차이즈 종교에는 강점이 있다. 어떤 상황에도 적용 가능한 방대한 전통과 상징적, 물적 자산이 그것이다. 교세 유지를 위해 몇몇 고정된 교리 수호에 얽매이거나, 특정 집단을 희생양 삼아 차별이나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그 몰락을 앞당길 것이다. 그러나 전통에 기반을 둔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를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 적응시킨다면 활로는 열릴 것이다. 아니, 사실 그것만이 살아남을 길이다. (한겨레신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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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8 17: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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