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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후속 세대는 꿈조차 뺏긴 사실상의 최초 세대다. 하는 일 없이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반려동물이 부럽다고 할 정도다. 희망 상실이다. 부모 말을 잘 들어도 행복해질지는 미지수다. 부모보다 빈곤해질 원년 세대란 분석도 있다. 다행인 건 선배 세대에 비해 자라날 때 절대가난을 몰랐다는 점이다. 취업 전선에서 빈곤ㆍ패배는 절감된다. 성실이 생존을 담보해준 신화는 무너졌다. 이들 신인류가 본격적인 생산ㆍ소비 주체로 쏟아진다. 인구가 시장을 바꿀 찰나다.


후속 세대는 미래 주역이다. 멤버가 바뀌면 무대는 변한다. 그것도 길고 심한 변화 예고다. 생산ㆍ소비 현장은 핵심 인구의 변화로 확연히 달라질 전망이다. 새판 형성이다. 전체 판세는 고객 감소로 요약된다. 2017년 생산가능인구(15~64세ㆍ3757만명)는 최초로 줄었다.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는 50년 후(2067년 1784만명) 2000만명의 증발을 예고한다. 감소세는 가파르다. 거대 집단 베이비부머의 유출분을 저출산의 후속 인구로 채울 수는 없다. 2020년부터 매년 70만~80만명이 빠지고 40만~50만명만 보태진다. 1975년생의 65세 진입까지 감안하면 향후 20년간 생산가능인구는 연평균 50만명씩 줄어든다. 시장을 구성하는 생산ㆍ소비가 축소될 수밖에 없으니, 요컨대 수축 경제다.



양적 감소만 수축 경제를 낳진 않는다. 달라진 가치ㆍ인생관이 반영된 질적 변화도 소비ㆍ시장의 기존 질서를 뒤흔든다. 후속 인구는 부모 세대와 소비 지향이 다르다. 달라진 고객의 달라진 생활은 달라진 욕구와 달라진 소비를 뜻한다. 당장 소비 저항이 굳건하다. 돈도 꿈도 없거나 적어 핍박 지출이 불가피하다. 물론 쓰긴 쓰나 기준이 다르다. 이게 미래 시장 후속 고객의 포인트다. 시대 변화에 최적화된 후속 세대의 남다른 소비 트렌드인 셈이다. 공(gong)은 울렸다. 1990년대생 이후 세대만 봐도 확인된다. 공고하던 생애주기별 특정 소비는 무시된다. 세대별 역할 바통을 거부하니 특정 연령대별 선호 소비도 줄어든다.


달라진 청년 세대는 졸업 이후 최소 60~70년간 시장과 호흡한다. 전원 인구유지선(출산율 1.3명) 아래에서 태어난 저출산 당사자로 색다른 인생 경로를 지향한다. 이들이 생산ㆍ소비 주체로 시장을 뒤바꾼다. 악재와 호재는 공존한다. 사양 압력만큼 성장 기대도 있다. 돋보이는 소비 트렌드는 현실타협형이다. 소극적 현타 소비가 그렇다. 그다음은 '득도(得道) 소비'다. 현타 소비가 반복되면 길게 봐 소비 만족에 저항하는 득도 소비로 연결된다. 써본들 의미가 없거나 작으니 아예 시장에서 이탈하려는 기제다. 일찌감치 소비 효용에 큰 가치가 없음을 깨닫는 득도 단계의 소비 스타일이다.


현실 타협이 현타 소비면 득도 소비는 현실 탈피에 가깝다. 부모처럼 살 수 없거니와 성취도 어려워 자괴감ㆍ박탈감이 소비 현장에 체화된다. 최선책은 각자도생뿐이다. '취업 실패→절망 증가→의욕 상실'의 악순환이 자연스레 인생무용론의 득도를 심화시킨다. 취업해도 종신고용ㆍ연공서열 등 전통적인 생활급여의 붕괴로 승진ㆍ출세에 대한 실현 욕구가 현저히 낮다. 눈치껏 버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떨어지면 손쉽게 그만둔다. 그나마 처음엔 현타 소비로 우울을 해소하지만, 득도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절약 지향을 넘어 지갑을 닫아버린다. 순간순간 탕진잼을 부추기는 충동적인 시발비용만 목격된다.


일해서 벌고, 가족이 돕고, 건강하니 좋아질 것이란 기성세대의 가르침(?)은 거부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는 되레 득도시장의 반발적인 성장 토대일 따름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득도 상황에서 지출하는 소비 품목이다. 일종의 대안 소비ㆍ대체 소비로 해석된다. 가령 연애ㆍ결혼의 대체 소비로 관계 연결형 인연 증진에 돈을 쓴다. 포기한 내 집 마련의 반대급부로 고가의 컴퓨터를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아봐야 무의미하니 그때그때 본인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값비싼 취미ㆍ여행 등의 소비도 같은 맥락에서 확대된다. 스트레스가 없다면 안 쓴다는 점에서 시발비용에 가깝다.


그렇다고 탕진형은 아니다. 다른 이에겐 휘발적인 소비라도 본인에겐 가치 소비란 점에서 개별적 합리성을 강조한 '휘소가치'와 비슷하다. 남들에겐 충동ㆍ즉흥적인 휘발성 소비이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가치 소비로 강조된다. 가령 값비싼 피규어나 캐릭터 인형은 실용성과는 무관하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 만족감을 주기에 가치 소비에 가깝다. 절약 지향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현타 소비와 구분된다. 득도 세대의 소비 저항은 전통적인 청년 소비로부터의 결별을 뜻한다. 청년이면 선호해온 인기 품목을 거부한다. 해서 우울시장에 속한다. 역으로 득도 청년의 지갑 오픈을 부추길 대안 제안은 절실해진다.


남들에겐 휘발성 소비지만
정서적 만족감 줄때는 지갑 열어
'고가격=고가치'는 부정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게 주거 소비다. '졸업→취업→결혼→출산→양육'이 원만하던 시절엔 청년 인구의 내 집 마련 시도가 자연스러웠다. 반면 조촐해진 은퇴 세대는 집을 중고로 내놓고 노후를 대비했다. 이 역할 구조가 흔들린다. 은퇴 세대의 양도 부동산을 받아줄 후속 세대가 적어져서다. 길게 봐 시장 재편의 유력 신호일 수밖에 없다. 즉 청년 중심의 '소유→사용'으로의 인식 전환이 중고 주택의 세대교체를 가로막는다. 소득 불안과 맞물려 구매 허들이 높아진 부동산을 아예 포기하는 인식 변화가 후속 세대에선 보편적이다. 


청년 그룹의 음주 거부도 비슷하다. 후속 세대는 술을 덜 마신다. 음주 이탈이다. 일본의 주류 출하량 감소는 전형적인 득도시장의 소비 포기로 이해된다. 음주 습관율은 20대 남성(10.9%)보다 40대 여성(15.6%)과 50대 여성(12.4%)이 더 높다. 2030세대 청년ㆍ남성의 음주 이탈이 원인이다. 업계는 득도 소비의 맞춤형 신상품으로 대처한다. 산토리의 고알콜 캔음료 '스트롱제로시리즈'처럼 캔 1개면 쉽고 빨리 취하도록 해 득도 청년을 유인한다.


시장ㆍ기업은 득도 청년 분석에 열심이다. 크게 3가지다. 먼저 불완전한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의 각인이다. 이 때문에 가성비가 중시된다. 명품 1장보다는 패스트패션 여러 장이라는 위험 회피적 사고 체계가 많다. 태어날 때부터 풍족해 애초 물욕이 적다는 점도 특징이다. 저성장 경험까지 더해져 디플레이션에 유리한 상품에 익숙하다.


 패스트패션ㆍ아웃렛ㆍ저가 안경ㆍ편의점 자체브랜드(PB)ㆍ경자동차ㆍ저비용항공사(LCC) 등은 성장기부터 친숙한 대상이다. 가난해도 양질의 물건을 살 수 있음에 만족한다. 정보 범람으로 기시감에 따른 의욕 감퇴도 본격적이다. 인터넷 덕에 미경험인데도 경험해본 듯한 기시감이 소비 의욕을 줄인다. 자동차ㆍ해외여행ㆍ음식 탐방 등도 간접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고가격=고가치'는 부정된다. (서울경제신문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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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5 17: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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