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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대한법무사협회장.법학박사)


법과 도덕의 관계에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지만 최대한으로도 불린다. 도덕 중에서 최소한 일부는 반드시 강제성을 띠는 법으로 규제할 필요성이 있으며, 한편으로 이러한 법적 수단을 통하여 도덕을 실현한다는 면에서는 최대한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항은 법을 잘 모르는 시민에게도 잘은 몰라도 안도감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거기에는 민주시민으로서 개인의 주인의식과 자긍심이 담겨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은 법률의 제정, 집행, 재판 및 법률가의 행동양식과 같은 모든 법률 분야에서 시민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함을 말한다. 이런 까닭에 시민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법률은 악법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민을 사익을 위한 객체나 수단시하는 법률가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인인 국민의 존재는 입법 단계에서 법 제정의 주체로서 나타난다. 그래서 민주사회의 입법은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입법이어야 한다. 시민이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므로 무엇보다도 우선 법률용어의 의미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우리와 같이 성문법 체계를 취하는 경우에야 말할 나위가 없다.

법의 집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법 집행은 다수이익을 공리(公利)로 보아 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주인인 시민을 대상으로 하므로 절제되고 품격있는 행사가 요구된다. 시민은 타고난 인권의 주체이므로 법 집행의 범위와 방법에 있어서도 적정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을 떠올리면 법 집행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대부분의 인권침해가 법의 집행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행정은 집행의 다른 말로서 입법목적을 그 취지에 따라 실현하는 행위다. 그래서 입법에서는 정의 이념이 지배하지만 집행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목적성 이념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다. 경찰, 검찰의 법 집행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집행절차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시민이 주인이어야 함은 사법에서도 매한가지다. 몽테스키외도 법관은 피고와 동등한 신분이나 위치에 있어야 재판의 신뢰가 유지된다고 하면서, 국가조직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자유를 형성하는 법의 정신을 설파하고 있다. 법정에서 당사자석보다 높게 설계되어있는 법관석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법의 원리를 떠나서도 법관은 심판자일 뿐 재판에서 진정한 주체는 시민이라고 해야 한다.

한편 사법의 분야에서도 입법에서와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 재판의 결정체인 판결문 곳곳에서 낯선 용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백번 양보하여 그것을 원래의 법 문구 탓으로 돌리더라도 정작 이해 못할 것은 문장 독해의 어려움이다. 일반 글과 비교하여 문장이 지나치게 길고 주술관계와 수식관계가 분명치 않아 문장의 의미가 애매한 경우를 많이 봐왔다.

이 정도면 판결문에 독자성을 부여하여 판결문체로 이름 지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사정이 이러니 법률전문가조차도 판결의 의미를 파악하기에 곤란을 겪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려운 법 언어의 구사에서 법률가의 권위가 나온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글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오늘날에 그것은 극복해야 할 폐해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빈번한 상소 유발 및 당사자의 방어권 침해로 인한 재판받을 권리의 실질적 침해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면 분명 심각한 문제다.

법률가 중심의 사고는 법률전문가의 실제 활동에 있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직도 다른 분야에 비하여 법률자격사들의 접근문턱이 높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문턱은 법률권위주의와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의뢰비용에서 비롯되는 것이 큰 만큼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법은 법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법률과 그 운용은 철저히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 이것이 법률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머니투데이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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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4 16: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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