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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향후 세계사는 코로나19 전과 후로 구분될 정도로 모든 방면에서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로, 1980년대 이후 지구촌을 이끌었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무너지고 있다.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찾아 가장 효율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던 세계화의 물결은 코로나 사태로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주요국은 비록 일정 부분의 효율성을 희생하더라도 보다 안정적이고 투명한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자신들의 역내에서 해결하려 할 것이다. 또한, 원격진료나 원격강의처럼 정보기술(IT)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비대면 산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백신 개발이나 인공지능(AI) 등 관련 산업의 중요성도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코로나 계기로 재정 지출 폭증     위기 끝나도 轉位효과 부작용

기축·準기축國 따라 하면 위험     저출산·통일用 재정 여력 필요

현재-미래 고통 분담 고민할 때    힘들어도 現세대 부담이 正道


국가와 공공의 역할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투명하고 능력 있는 국가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사례가 생생히 보여준다. 또,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고 조정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지원과 조정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조정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영세사업자나 취약계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은 시급한 정책 과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제창한 ‘전(全) 국민 고용보험’도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추진하는 데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이미 세계 각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 풀기에 나섰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경기침체와 다가올 글로벌 구조조정 과정에서 더욱 확대된 통화 및 재정정책이 요구될 것이다. 정부는 3차 추경을 준비하고 있다. 두 차례 추경으로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42%를 넘어 그동안 지키려고 노력했던 40%를 쉽게 돌파하게 되며, 큰 폭으로 예상되는 3차 추경까지 더하면 45%에 이를 전망이다. 더구나 유럽의 주요국 등 다른 나라의 실태를 지적하며 국가채무가 GDP의 60%까지 증가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여당 핵심 관계자의 언급을 고려한다면 재정 확대 수준이 어디까지 이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과거 예를 볼 때 전쟁이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조세부담률이나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위기가 종료된 후에도 그 수준이 하락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이른바 전위(轉位)효과가 발생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역량을 총동원해 위기를 극복하는 게 우선이므로 국민의 부담과 관련, 기왕의 제약들이 일시적으로 문제시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록 단기적으로 큰 규모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그에 따라 면밀한 재정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재정이 다 할 수 있다는 관점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의 균형 있는 역할 분담은 무엇인지, 저출산 고령화가 야기하는 재정 부담이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요구된다. 기축 또는 준(準)기축 통화국인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과 단순히 국가채무 수준을 비교하기보다는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신흥국으로서 한층 취약한 우리의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한편, 재원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를 조세를 통해 현세대가 부담할 것인지, 차입을 통해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남겨둘 것인지, 또는 그 부담 비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조세 인상은 납세자들의 저항을 일으키므로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인들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대안이며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남기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추가 지출의 효과가 주로 현세대에 미치는 것이라면 그 부담도 당연히 현세대가 조세를 통해 부담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는 우리의 성과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전문가 중심의 투명하고 효과적인 정부의 방역 체계, 민간기업의 빠르고 효율적인 진단 기술 개발 등을 기반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런 협력 모델은 비단 방역만이 아니라 경제와 재정 운영은 물론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따라야 할 모범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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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4 16: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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