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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활/네델란드 황금기 주역 동인도회사와 실용주의
  • 기사등록 2020-05-12 15:45:08
  • 기사수정 2020-05-12 15: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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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돌고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나름대로의 황금기를 갖는데 네덜란드는 17세기가 사상 최고의 황금시대였다. 100년 이상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그 제국은 무역, 상업, 금융 등 경제적 번영은 물론이고 학문과 예술도 세계적 수준이었다. 


과학에는 뉴턴급의 물리학자 하위헌스, 현미경을 발명한 얀센과 레벤후크, 망원경을 최초로 만든 리퍼세이 등이 있었다. 철학과 법학에는 '철학의 그리스도' 스피노자와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술에는 빛의 마술사들인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등이 활동했으니 19세기 말 '벨 에포크' 파리의 프리퀄이었다.

인구와 영토 모두 작디작은 나라가 단기간에 이룬 영화가 놀라운데, 그 중심에 동인도회사가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현대 미국의 상위 20대 기업가치를 합한 수준의 초거대 기업이었던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시장과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어 황금시대의 면류관이 됐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주식회사와 증권시장의 정확한 실태는 세계 최초의 증권투자론 저서라는 베가의 '혼돈 속의 혼돈'(1688)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2011년 젊은 학자 로데베이크 페트람은 박사 논문을 위해 400년 전 조국의 고문서 더미들을 뒤지고 다닌 끝에 당시 모습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페트람이 자신의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의 내용 등에 비추어 일반 상식화돼 있는 중대한 오해 몇 가지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였나?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 주식회사의 기원은 논자에 따라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의견이 분분한데, 현대적 주식회사의 모델로 따져도 영국에서 1600년 12월 설립된 동인도회사가 먼저다. 이 영국 회사에 위기를 느낀 네덜란드 무역회사들이 1602년 3월에 통합해 만든 것이 주식회사 VOC(통합동인도회사)였다. 그러나 영국과 달리 사모가 아니라 공모 방식으로 국민 일반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초기 자본이 10배나 많았다는 점과 공모의 결과 유통시장이 발달돼 세계 최초의 증권시장으로 성장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윤의 지속적 축적으로 계속기업(going concern)의 속성이 보다 강했다는 점들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는 최초의 주식회사라 해도 무방하리라.

둘째, 주권이라는 유가증권이 있었을까? 없었다. 주권이 발행되었다면 주권의 교부만으로 권리가 완전히 이전됐을텐데 주권이 없다보니 양도할 때마다 양도인과 양수인이 회사의 주주명부 담당자에게 같이 가서 명의개서를 해야 권리가 이전됐다. 이러한 양도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청산거래, 선도, 옵션 등 파생시장이 발달하게 됐다.

셋째, 주주권이 있었을까? 이사 선임을 위한 의결권 등 공익권은 없었고 배당을 받을 권리만 있었다. 주주라기보다는 채권자 내지 실적 배당을 받는 신탁의 수익자와 비슷했다.

넷째, 증권거래소가 있었을까? 자율규제기능을 가진 조직화된 시장관리기관은 없었고 시장만 존재했다. 즉 여의도 거래소가 아니라 남대문시장 안에 개인 간 증권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골목이 있었던 셈이다. 조직화된 브로커들이 모여 사적 자치를 행하는 회원제 클럽으로서의 거래소는 17세기 말에 가서야 등장한다.

다섯째, 투기의 역사적 대명사 튤립 파동(1636~1637)이 네덜란드 경제에 끼친 영향은 컸을까? 그다지 크지 않았다. 튤립 거래자들 대부분은 동인도회사 주식 거래를 하지 않았고, 거래자 수도 주식 거래자에 비해 적었다. 튤립 파동 이후에도 동인도회사 주식은 꾸준히 상승했다.

네덜란드의 성공에는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라는 점과 철저한 실용주의가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절대군주제를 취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공화제였고 신분에 따른 차별도 약했으며 종교재판소가 여전했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종교의 다양성도 인정됐다. 이에 따라 이베리아 반도와 주변국에서 유대인과 신교도들이 상당수 이주해왔다. 이들 대부분은 지식층 상공인들이었고 개혁과 혁신 마인드로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주식회사와 증권시장이라는 창의적 혁신이 이뤄졌다. 그리고 자유와 실용주의의 토양에서 꽃피는 이러한 혁신은 영국과 미국으로 이어져 오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아시아경제신문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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