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성균관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제질서·경제구조,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를 선택하면서 고립주의가 강화되고 글로벌 가치사슬도 탈동조화하기 시작했으며 비대면경제가 일상화되면서 모든 국가의 ‘뉴딜’도 미래산업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도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을 절제하면서 공동체와 삶의 가치가 바뀌고 있다.


 이처럼 성을 허물고 길을 내는 시대가 끝나고 헨리 키신저의 말대로 중세와 같은 ‘성곽도시(walled city)’가 가까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단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는 W자 형태로 지속해서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의 치료제와 백신이 발견된다면 한동안 짧은 평화가 오겠지만 작은 질병에도 오늘의 놀란 기억을 쉽게 불러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학문적 통찰력만으로는 오늘의 세계를 해석하기에 역부족이다. 세계 질서의 주역이 된 바이러스가 포스트모던의 문제를 던지고 있는데 근대적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를 중심에 놓고 집단지성이 작동하고 정책 집행의 거래 비용을 줄이면서 빠르게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now and here)’ 리더의 조건을 묻는 것이다. 매년 영어로 된 리더십과 관련한 책만 250권씩 발행되고 있지만 훌륭한 지도자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가치를 발휘하는 공통점을 주로 강조한다. 그러나 오늘의 리더는 새로운 덕목으로 무장해야 한다.

첫째, 시대 상황에 유연하게 올라타고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집념은 미덕이 아니라 결함이 될 수도 있다. 미래도 먼 시간에서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가려진 곳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 진실을 찾는 ‘실사구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 지적인 능력이다. 복잡한 주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반론에 맞설 수 있는 자신감, 독창적 생각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국가로의 회귀와 국제협력, 방역과 경제, 욕망과 절제, 민주주의와 업적주의(meritocracy) 등 양립하기 어려운 중층적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셋째, 사회적 기술이다. 현실과 미래의 대충돌 속에서 많은 이익상관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자아 성찰, 충동을 억제하는 자제력,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사교 능력이라는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은 필수적이다.

넷째, 시대에 부합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다. 사람을 식별하고(知) 추천하며(擧) 쓰고(用) 개성을 찾아주며(待) 길러내(育) 리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함께 보고, 운명을 같이하는 정책 결정 집단이 두터워져야 한다.

다섯째, 위기관리 능력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전통 안보가 아니라, 적을 특정하기 어려운 ‘신흥(emerging) 안보’다. 이것은 맞춤형 정책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정책의 유효 기간도 짧다는 점에서 사전예방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요하는 민심을 다독이고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면서 회복탄력(resilience)을 위한 사후관리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대혼란기다. 최근 250년 동안 인간이 자행한 것에 대한 지구의 역습이다. 오랫동안 응축된 것이 마침내 폭발하고 있다. 마침 제21대 국회가 출범한다. 복잡한 세계를 해석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래담론이 청산담론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에서는 당선을 위해 자신을 모든 밑천을 쏟았지만 지금부터는 종횡의 공부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호주 총리를 지낸 케빈 러드의 말처럼 ‘포스트 코로나 무정부’가 가까이 와 있는 상황에서 ‘왜 정치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경제신문 2020.05.12)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0-05-12 15:37:00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유니세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