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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 2/ 왜 예언이나 점은 잘 맞아 보일까
  • 기사등록 2020-05-04 12:30:45
  • 기사수정 2020-05-07 1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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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 [2]


왜 예언이나 점은 잘 맞아 보일까?


(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정감록』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 


해가 바뀌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요즘도 국가의 장래를 말할 때 『정감록(鄭鑑錄)』을 들먹이는 사람이 있다. 구독자 수십만을 자랑하면서 유구한 역사와 권위를 지닌 주요 일간지마다 ‘오늘의 운세’가 실린다. 또한,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에 관해 언급할 때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꼭 등장한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다음 살펴보니, 이미 수백 년 전에 그가 쓴 예언서에 예언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가 하면 대학입시철이나 선거철이 다가오면 학력 좋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마나님들이 점쟁이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를 비롯하여 문명의 여명기에는 여러 민족, 국가들이 신탁이나 점술에 의지하여 중요한 의사 결정을 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할지 말지 하는 문제마저 신탁에 의해 최종 결정했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문명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21세기 정보사회에서도 점술이 성행한다. 구시대 문명의 찌꺼기로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최첨단 기술을 통해 더욱 빠르고 넓게 유통,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된 오늘날 점술이나 예언이 활개 친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위키피디아 사진) 


왜 사람들은 이처럼 점성술에 의지하려고 할까? 무엇보다도 미래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쁜 일,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마음도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과연 사람들은 점쟁이, 점술가나 역술가(점쟁이보다 훨씬 근사한, 전문가다움을 풍기는 명칭이다)의 예언을 어느 정도 믿을까? 


이런 전문가들을 애호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은 앞일을 기막히게 잘 알아맞힌다고 한다. 한 마디로 ‘족집게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예언이 텔레비전의 일기예보보다 더 잘 맞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기상 예보에는 매우 구체적인 표현이 동원된다. 예를 들면, “내일 서울지방에 오전에 15밀리미터의 비가 내릴 것이다.”라는 식이다. 그 다음날 비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오전이 아니거나 강우량이 이와 다르면, 예보가 ‘틀렸다’고 명쾌히 말할 수 있다.


점술가의 예언은 이와 다르다. 다음은 일간신문의 ‘오늘의 운세’와 『토정비결』에 나온 표현이다. (1)“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이 결국 이득이 된다.” (2)“모든 일의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운 운세다.” (3)“어떤 일에 부닥쳐 경솔하게 대처한다면 뜻밖에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자신의 운세가 이 세 문장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된 당사자가 있을 때, 그 기간이 지난 다음 이런 예언이 ‘틀렸다’고 판정할 수 있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과학적 예측과 점술가의 예언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 과학적 예측에 대해서는 맞았다, 틀렸다고 명쾌하게 판정할 수 있다. 


점술가의 점괘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판정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용한 점쟁이일수록 ‘틀렸다’고 명쾌하게 판정할 수 있게는 절대로 예언을 하지 않는다! 

점술가의 예언은 그 표현이 상당히 애매모호하고 고도로 추상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따라서 얼마든지 견강부회(牽强附會)할 수 있다. 또한 지극히 당연한 주장, 거창하게 말하면 시공을 초월하여 타당한 주장을 편다. 예언의 이런 특성은 위 인용문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예언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통할 수 있는 진리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한 개인의 삶부터 한 국가의 향방에 이르기까지 그 미래가 어떻게 될 지를 알기는 어렵다. 무한하다고 할 만큼 다양한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구체화되는, 개인의 삶이나 집단의 미래를 추측해보는 일이 쉬울 수 있겠는가. 세상사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기 어렵다’는 말이 오히려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점쟁이의 예언에 귀 기울이지 말자. 그런 말에 솔깃해하는 태도는, 좋게 말하면 순진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말에 줏대 없이 현혹당하고 있다는 말밖에 안 된다.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혜와 실천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건 싫건 인간의 삶은 어떻게 우리가 지혜를 키우고 또한 그것을 문제 해결과 개선에 적극 반영하는가에 따라 발전하거나 퇴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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