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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국립대 정치국제학 교수) 


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진척 상황을 보니 각 국가의 민낯이 벗겨지는 듯하다. 사회과학자로서 국가와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 시점에 필자가 거주하는 싱가포르에는 비상이 걸렸다. 싱가포르 인구는 한국 전체 인구의 10분의 1도 안 되지만 하루 1000명 이상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초기에는 방역 모범국이라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총 확진자 숫자가 한국을 능가했다. 특히 대부분 확진자가 외국인 노동자여서 비판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가 전체를 봉쇄한 상황이다.

고강도의 격리 정책으로 조금씩 효과를 거두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분명 있다. 일본은 방역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필리핀은 더 안타깝다. 확진자 수가 증가하자 국가를 봉쇄했지만 의료진이 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간호사들이 대거 해외 취업에 나서면서 자국에서는 오히려 의료진이 부족해져 확진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글픈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신속히 대처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질병관리본부가 체계적으로 대응했고, 시민들 역시 급박한 상황에서 높은 의식을 보여줬다.

솔직히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다. 해외에 오래 거주하고, 한국 왕래도 자주 하는 편이지만 고질적 혹은 무의식적 패배 의식이 항상 밑바탕에 있다고 느껴왔다. 특히 한국의 교육이 가혹하고 경쟁적이어서 그런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헬조선이라는 자기비하적 표현을 많이 접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는 주변인들에게 그리 공감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한국 정부 등에 대한 비관적 태도는 어느새 "한국 괜찮다. 이만하면 살만한 나라"로 바뀌고 있다.

엄중한 코로나19 사태가 국가관을 더욱 긍정적 방향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 한국은 정말 많은 사건을 겪었다. 그리고 성장했다. 민주주의 항쟁과 경제 성장, 국난 극복을 수없이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우리다. 한국의 근현대 정치 문화사를 싱가포르 학생들에게 가르치다보면 가장 많은 관심은 높은 시민 의식이다.

국가나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 있는 건 좋지만, 이제 한국도 긍정적 국가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비판과 비평은 필요하다는 전제는 있어야 한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의 시각'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졌고, 민주주의를 우리의 손으로 이뤘다. 우리 자신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 현명하고 융합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했다. 긍정적 시각과 자부심을, 세계에 대한 인도주의 식견과 발전을 위한 비판 의식을 갖춰야 할 중요한 시기다. (아시아경제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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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28 12: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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