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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으로 4차 산업혁명에 가속이 붙었다. 대도시의 텅 빈 거리와 대조적으로 모니터 앞에 앉은 사람들의 화상회의 장면은 일상의 디지털화를 실감하게 한다. 거리두기로 인간은 일·여가·삼시세끼의 디지털 전환을 받아들였지만, 이것이 인류가 처할 불가역적 변화의 전부는 아니다. 주목할 점은 강제된 변화에 이어질 인류의 선택이다.


4차 산업혁명엔 속도가 붙었으나 방향은 틀어졌다. 스마트한 초연결의 미래상에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이라는 조건이 추가됐다. 전시 상태와 같은 지리적 봉쇄와 격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해외 생산기지 셧다운으로 원자재와 부품의 공급중단을 겪은 기업들은 공급망 통제력과 자급구조 부족에 아쉽다. 바이러스에 무력했던 국제기구보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 역할이 중시될 것은 자명하다.


팍스 시니카(Pax Sinica)에 경계


그래픽=최종윤

생존에 대한 21세기적 각성은 현 글로벌 분업구조 아래에서의 4차 산업혁명에 의문을 던진다. 전 세계에 펼쳐진 글로벌 생산체계는 지속 가능한가, 세계의 생산 공장을 중국과 아시아에 맡겨도 될 것인가.


코로나19 이후 중국이 세계 넘버원이 된다는 여러 전문가의 예측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생산체계에 대한 짙은 경계심이 서려 있다. 중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고 중국 각 지역이 생산을 멈추자 전자제품부터 생필품까지 세계의 물자 유통에 차질이 생겼다. 1·2·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던 미국과 유럽 주요국조차 필수 물자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히려 중국이 코로나19 사태로부터 회복세를 보이며 이탈리아 등 피해가 심한 유럽 국가들을 지원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 이 경험은 분명 미국과 유럽인에게 중국의 존재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를 넘어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로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주도자다. 미국 씽크탱크 ‘퓨처 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중국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부문에서 가장 앞섰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라면 중국은 새로운 OPEC이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그저 세계의 굴뚝이었다. 고부가가치 첨단기술은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것이었고, 저부가가치 제조를 중국과 아시아가 맡았다. 이러한 체계는 2012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을 선언하면서 약화한다. 중국은 기술 추격과 함께 통신,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 선도를 동시병행으로 추진했다. ‘중국제조 2025’ ‘스마트 플러스’ ‘차세대 인공지능’ ‘유니콘 기업’ 등 굵직한 육성정책을 통해 중국 혁신 생태계는 캄브리아기적 번성기를 맞는다.


중국 굴기를 가장 경계한 나라는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고부가가치 영역을 미국과 나눠 갖거나 독차지할 미래에 대해 직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진작 중국 통신장비기업인 화웨이를 기술 침해로 제재했다. 이러한 견제는 반도체를 포함해 첨단기술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코로나19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기술 견제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소극적이거나 방관했던 여러 나라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례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중국 등지에 나가 있는 일본기업 생산시설의 국내 복귀를 요구했다.


심각한 피해를 본 유럽에서도 동조하는 흐름이 엿보인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의 본산이 바이러스 공격에 취약했다는 사실은 유럽 주요국이 향후 기술과 산업 안보 강화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초 “유럽 나라들이 칩과 배터리 셀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혁신국가 비전을 가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의 정상들이 생산기지의 유럽 귀환 및 산업 르네상스를 추진할 일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요컨대 코로나가 보여준 미래상은 미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의 경각심을 최고치로 올렸다. 미·중 양강의 기술전쟁은 격화하고, 기술력이 강한 나라들은 산업의 요새를 높이 쌓을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관세 조정, 지식재산권 수호와 기술유출 제재의 선두에 설 것이다. 중국은 지식재산권 같은 방어막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서 치고 나갈 것이다.


‘분업·공유가 미덕’은 옛말


한마디로 ‘기술 냉전’이다. 글로벌 분업과 공유의 미덕이 줄고, 각국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가속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변화의 방향은 선명하다. 원격·비대면 서비스가 부상하고, 숙박공유나 차량공유 모델은 다소 위축된다. 인공지능이 바이러스 치료제의 신속한 발견에 쓰였듯,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산업혁신이 활발해진다. 각국이 전략물자의 국산화를 장려하거나 필수물자 확보를 위해 공공구매 시장을 확대할 변화도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산업 안보와 기술 선도 전략의 병행이다. 작년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해 반도체 산업에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쇼크가 언제 어느 산업에서나 일어날 수 있음에 대비해야 한다. 전 산업 분야에서 공급 체인상 위기 요인을 점검하고 공급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기술선도다. 반도체·5G 등 첨단산업의 선두를 유지하고 바이오·인공지능·핀테크·우주 등 유망산업에 빠르게 진입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응 모범국가로 부상한 우리나라가 그 물적 기반이 될 혁신 강국의 꿈도 이루기를 기대한다.


세계 최고 혁신 기업, 미국 아닌 중국의 바이트댄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인공은 혁신기업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 기준 전 세계 유니콘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은 총 451개로, 이들의 가치 총액은 1조3485억 달러(1660조원)에 이른다. 이중 미국과 중국 기업의 합이 328개이며, 가치 총액으로 1조 달러가 넘는다. 한마디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최전선에 미국과 중국의 혁신기업이 있다.


2020 주요국 유니콘 기업 수와 총 기업가치 분포

미국과 중국에 유니콘 기업이 집중되는 까닭은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혁신의 자원(인재와 자금)이 풍부하고 시장이 커서 창업과 기업 성장이 빠르다.


양국의 차이는 혁신 환경을 조성하는 제도에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 진흥 정책과 혁신 인프라의 영향을 크게 받는 데 비해, 미국의 창업 기업은 민간 주도의 투자와 시장 경쟁 환경에서 성장한다.


미국의 우세 속 중국의 빠른 추격에 주목할 만하다. 불과 몇해 전까지 우버와 같은 미국 업체가 유니콘 기업의 대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유니콘 기업 최고 순위에 중국의 인터넷 미디어 기업인 바이트댄스가 올랐다. 상위 10대 유니콘 기업 수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은 2019년 각각 7개, 2개의 기업을 올렸고 올해에는 각각 4개를 올렸다. 올해 미국의 유니콘 기업 총수는 중국의 약 두 배지만, 기업 가치는 1.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인도와 영국의 유니콘 기업 수와 가치 총액이 크며, 그 다음을 한국과 독일이 차지했다. 한국은 2020년 10개의 유니콘 기업을 리스트에 올렸다. 국가별 순서로 보자면 기업 수는 6위, 기업 가치는 5위에 해당하는 성과다. 독일과 비슷한 규모다. 쿠팡은 201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니콘 기업 목록에 올랐다. 이후 해마다 한두 기업이 추가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작년에는 무신사와 에이프로젠이 합류했다.


유니콘 기업 중 높은 성장세를 보인 분야는 핀테크·전자상거래·인공지능·차량공유 순이었다. 혁신의 사회적 선택과 확산이 빠른 영역에서 유니콘 기업이 출현한다. 더 쉬운 결제와 송금,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즐길 거리 많은 생활, 가성비 높은 선택과 소비 등 인간이 혁신을 필요로 하는 지점이 곧 유니콘 기업의 기회다.


최근의 추이를 봤을 때 건강데이터 분야의 약진을 주시해야 하며, 향후에는 코로나 사태와 관련된 교육기술·비접촉기술 분야의 성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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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27 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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