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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駐유엔 대사)

코로나 이후 세상 전방위 변화

국정 실적 없으면 民意 급반전

이념적·정치적 양극화도 악화

동맹 강화로 北 불안정에 대응

중국 코로나 책임론도 새 변수

독주 벗어나 人的 균형 갖춰야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질병의 고통과 죽음은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줬다. 당연히 감염병과 공중보건에 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고 경제와 국제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예견된다. 한편, 생명·가족·공동체·인권 등 전통적 가치는 강화되고 지정학·국익·동맹·북한 비핵화 문제 등 안보 상황은 변함없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많은 부분이 우리 자신에게 달린 만큼 힘을 합쳐 미래 대비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4·15 총선은 시대적 중요성이 있었고, 민심은 지난 3년간의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보다 국난 극복을 위한 힘 실어주기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상대의 무능에 의해 얻은 반사적 승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향후 국정 운영에서 실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민심은 금방 정반대의 평가로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든 것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나, 5월 5일까지 연장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날짜가 아닌 안전한 재개 조건 충족 여부가 기준이 돼야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는 경구를 새기며 재창궐 가능성이 소멸될 때까지 필요하다면 조금 더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또한, 국제적으로 각자도생의 분위기 속에서도 다자주의와 세계적 협력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음에 비춰 초기의 오명에서 벗어나 방역 모범국으로 칭송받는 우리가 국제적 방역 협력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둘째, 전 세계와 함께 한국 경제도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도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모양이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을 사안이 재난적 상황을 맞아 선거 포퓰리즘 속에 분위기가 바뀌면서 다수 국민에 의해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책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오버톤의 창문 이론). 이처럼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모멘텀 제공과 함께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따라서 차제에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등 역효과와 부작용이 나타난 경제정책들을 재검토하고 경제살리기 동참을 위해 정책 곳곳에 배어 있는 반기업적 질곡들을 걷어 내어야 한다.

셋째, 정부는 안보 상황에 대한 재성찰이 필요하다. 북한은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와 투쟁하고 있는 와중에도 오불관언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 중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2019년 10월 발표한 세계보건안보지수에서 전 세계 195개국 중 최하위인 193위이면서도(한국 9위) 탄도미사일 발사를 계속 자행하는 것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회담 이래 초조해진 김정은의 자기 과시용 ‘물망초(forget-me-not) 도발’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지난해 -5%대의 성장을 기록한 북한은 1월 말 국경 폐쇄 이래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남쪽에 대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심리적 불안정 상태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글로벌 호크 도입조차 쉬쉬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그동안 확고한 대응을 보인 적이 없다. 적비성시(積非成是), 잘못된 게 쌓이면 옳은 것으로 간주된다.

CNN의 ‘김정은 위중’ 보도는 오보로 간주되고 있으나 계속되는 건강 이상설, 숙청, 끊임없는 수뇌부 서열 변동, 김여정의 정치국 후보위원 재임명 등은 폐쇄적인 북한 체제 내부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신호인 만큼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확산의 중국 책임론이 국제적으로 퍼지며 미·중 관계도 더욱 경직되고 있음은 하반기 한반도 안보 정세에 부정적 파고를 가져다줄 고래 싸움이다. 이런 때에 금강산 관광과 경협 등 제재 완화 조치 추진은 그릇된 판단이며, 한·미 간 비핵화 공조와 동맹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끝으로, 국민 통합을 위한 진정한 협치의 필요성이다. 책임은 가진 자의 탐욕에 있다는 말은 경제와 정치에 공히 적용된다. 이념적 양극화가 더욱 악화해 감정적·정서적 양극화로 치닫고 있음을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목도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치유해야 할 난제다. 문재인 정부가 그 치유에 진지함이 있다면 책임 정치라는 미명하의 정책적 독주에서 벗어나 보수-진보 간 균형을 갖춘 인적 재구성을 통해 경제·안보·사회 정책에 있어 진정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문화일보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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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23 14: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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