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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위기는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위기 그 자체보다 대응책이 나라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1970년대 석유 위기가 미국은 성장으로, 반면 유럽은 몰락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까지 고성장·저실업을 구가했던 유럽은 재정 확대와 규제 강화에 매달리면서 저성장·고실업의 늪에 빠졌다. 미국은 구조조정과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으로 고성장·저실업으로의 발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사회 시스템까지 바꾸었다. 중화학공업 육성뿐 아니라 부가가치세와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세제 개편은 재정 안정 기반을 강화했고, 의료보험은 병원비를 줄였고 생산성을 높였으며 코로나 위기에서 진가를 발휘한 의료와 방역 시스템의 기초도 만들었다.

코로나는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한다. 올해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과 대량 실업이 불가피하고, 그 폭과 지속 기간이 얼마나 될지의 문제만 남았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언제 개발될지 또 불안 심리는 어떻게 잠재울지 불확실하다. IMF는 최근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5.9%, 중국은 1.2%로 전망했지만, 미국은 지난 4주 사이에 실업자가 2000만 명을 훌쩍 넘었고, 중국은 1분기 성장률 -6.8%에서 보듯이 실상이 더 어둡다. 우리나라도 지난 3월 사실상 실업자인 일시 휴직자가 126만 명으로 363% 폭증했고, 그냥 쉬는 사람이 237만 명이며, 20대 청년은 40만 명이 넘는다.

대량 실업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재정 지원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소극적 대책으론 막지 못하고 장기 실업과 청년 실업만 악화시킨다. 유럽이 그랬다가 1990년대 이후 독일과 스웨덴 등 북부 유럽은 노동시장이 탄력적으로 대응해 실업을 줄이도록 제도를 뜯어고쳤다. 그러나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은 개혁을 외면하다가 고실업이 계속돼 재정 위기를 자초했다. 북부 유럽은 고용 안정 시스템 강화에, 남부 유럽은 고용 유지와 지원 확대에 기울면서 남부의 실업률은 북부보다 3∼6배 정도 커졌다. 이러한 차이는 코로나 사태 해결 역량에도 나타났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확진자 수는 비슷하나 사망자는 이탈리아가 독일의 5배쯤 된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대증요법에 매달리면 병이 악화하듯이 실업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나라는 위기를 시스템 개선으로 극복했다. 우리나라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노동시장이 피폐해졌다. 고용이 공공과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단절된 마당에, 노조의 요구대로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올려 놓고 저소득층의 일자리 파괴를 묻지 마 식 재정 지원으로 막으려 했다. 고임금에다 과보호 받는 10%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90%로 나뉘어 있는데 코로나 재난 지원금마저 똑같이 주면 취약계층에 줄 돈은 적어진다. 코로나로 쏟아지는 실업자를 지원할 금고가 텅 비는 일도 앞당기게 된다.

위기관리 정책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1970년대 의료보험 도입이 경제사회 시스템의 대변화를 가져왔듯이 코로나를 계기로 고용안정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난립한 고용지원금의 재원을 차라리 고용보험 가입이 어려운 계층의 실업부조 제도 도입에 투입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고성장·저실업시대에 설계돼 노동시장이 이중구조로 바뀐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부조 제도 도입과 함께 고용 창출을 방해하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고실업 국가로의 전락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총선에서 압승한 문재인 정권과 집권 여당이 해야 할 일이다.      (문화일보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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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21 1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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