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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1, 감정적 선입견이 문제다
  • 기사등록 2020-04-14 16:01:19
  • 기사수정 2020-05-05 10: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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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옛날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잘 생긴 소년이 있었다. 왕은 이 소년을 끔찍이 사랑했다. 얼마나 총애했던지 그가 늘 왕궁에 머물러 있게 하는 그야말로 특별대우까지 했다. 미자하가 어느 날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왕의 수레를 훔쳐 타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위나라 법에 따르면 왕의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탈 경우 두 다리가 잘리는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왕은 미자하의 일을 보고받자,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미자하에게 상을 내리면서 칭찬까지 했다. “미자하는 참으로 효성이 지극하구나. 그런 행동이 얼마나 무거운 형벌을 받는지 알면서도 오직 병든 제 어머니만을 생각하다니!”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기막히게 좋다며 반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그 맛있는 것을 다 먹지 않고 내게 건네다니, 진정 너의 갸륵한 마음을 알겠구나!”라고 찬탄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가 예전의 미소년이 아닌 모습으로 변모됐고, 그에 대한 왕의 사랑도 크게 달라졌다. 이런 즈음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왕이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이놈은 본래 성품이 되먹지 못한 놈이야. 전에 나를 속이고 수레를 탄 적이 있어, 그리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한테 주기도 했단 말이야!”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고사성어 ‘여도지죄(餘桃之罪)’의 유래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먹다 남은 복숭아를 바친 죄’라는 뜻이다. 대체로, 사랑을 받는 것이 오히려 죄를 짓는 결과를 낳고 만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 이야기 속의 위왕은 매사를 그저 감정에 따라 처리하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인간의 전형일까. 어떻게 똑같은 행위, 똑같은 사실에 대해 이토록 상반된 평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이다.


굳이 관점이라는 거창스러운 말을 쓸 필요도 없다. 사람이, 사물이, 사실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감정이 크게 출렁거리다 보니,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니 전연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범죄에 연루됐다고 들으면 분명 그것은 억울한 모함에 휘말린 것이거나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물론 내가 못마땅해 하는 연예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 사람이라면 드러난 잘못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알려지지 않은 비리나 부정이 엄청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속되고 거친 언사도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했다면 직언을 한 것, 생각을 솔직담백하게 토로한 것으로 해석한다.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이 그랬다면 그것은 무식하고 한심한 인격성을 드러내는 증표로 파악하고. 


이런 편협한 태도는 집단에 대해서도 나타난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거나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가 드러나서 해명할 경우 그것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 인식을 지닌 집단에 대해서는 설령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을 하더라도  별 근거 없는 온갖 음모론까지 들먹이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가 정책이나 종교의 경우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적 선입견을 동원하여 동지 아니면 적이라고, 거칠고 경솔하게 판단해버린다.


한 개인에 대해서든, 사소한 문제의 해법이나 거시적인 국가 정책, 이념, 믿음에 대해서든, 제시된 주장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선 섣부른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 주장을 들어 볼 일이다. 주장의 근거가 무엇이고 논리적 허점이나 사실과의 괴리는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문제 해결책이라면 구체성과 현실성의 측면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이런 노력을 착실히 기울인다고 해도 인간은 그리 냉철하거나 이성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선입견이나 편견이 덕지덕지한 감정을 통해 바라본다면 대상의 참모습이 얼마나 제대로 보이겠는가. 우리는 ‘여도지죄’ 이야기 속의 위왕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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