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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나는 지금 이 글을 집에서 쓴다. 오슬로대학 캠퍼스가 당분간 폐쇄되어 직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다행히도 프랑스·이탈리아와 달리 식료품과 약을 구입하는 목적 외에도 단순한, 잠시의 외출은 그나마 아직 허용된다. 1945년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는 유럽에서 그것도 고마운 ‘사치’로 느껴질 정도다. 한데 가끔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다.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 대비 확진자 수는 이미 한국의 거의 4배나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외출에 대한 규제들도 언제 강화될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불평하지 않는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데다 실직 위기에 몰릴 일 없는 나 같은 공무원들은, 미증유의 참극을 겪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거의 특권층에 해당된다. 특히 집중 타격을 받은 서비스업이나 여행·숙박·항공업 등에서 휴직과 해고가 속출하여 평상시 3%에 불과했던 노르웨이의 실업률은 이제 10%를 넘었다. 하기야 미국에서 머지않아 예상되는 약 30%의 실업률에 비하면 이것도 그나마 괜찮은 수준인지 모른다.

지금 세계 경제의 최상의 시나리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단기 불황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단순한 불황에 그치지 않고 1929년 이후 대공황이나 그보다 더 큰 규모의 공황이 도래할 것으로 내다본다. 실은 미국의 실업률이 정말로 30%에 이르면 이는 대공황 시절 최악의 실업률이었던 1933년의 24.9%보다 더 높은 것이 된다. 거기에다가 세계 시장 상황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는 중-미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위험의 지속적 심화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겪은 일들은 앞으로 전세계에 들이닥칠 연속적 재앙의 서곡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지난 3개월의 코로나 위기만 해도, 적어도 세 가지 신화가 이 위기 속에서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귀중한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첫째, ‘선진국’ 신화다. 근대로의 전환이 더 빨랐던 구미권 ‘선진국’들을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 여태까지 한국인들의 지배적 집단의식이었지만, 코로나 위기는 이 의식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잘 보여주었다. 구미권이 근대로 먼저 나아갔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크게 약화시켜온 구미 국가들은 무조건 선망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선진국’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신종 바이러스와 고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제때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잃었다. 특히 만성적인 예산부족 등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공공의료는 상당한 부실함을 드러냈다. 미국의 영리 목적의 민영병원 위주 의료시스템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선진국’ 일본의 경우, 검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지금까지 드러난 확진자 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시엔엔>(CNN)과 같은 주요 서방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판이다. 상당수 전문가들도 조직적 은폐 의혹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부족한 예산지원이나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못하는 영리의료, 재난 규모의 은폐와 축소 의혹 등을 과연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배울 점을 배워야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선진국’들의 민낯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더 이상 ‘선진국’ 신화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 신화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미국,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미국은 정부 주도로 무기 생산을 시급히 확충시키는 등 국가가 산업구조에 개입하여 비교적 능숙하게 재난을 극복했다. 그러나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지배를 거쳐 미국은 이러한 능력을 거의 상실한 듯하다. 의료설비 부족이 드러나도 국가가 처음에는 생산에 개입하기를 주저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바이러스 위협이 계속 남아 있고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약업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공공의료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절실히 필요한데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본격적·장기적 대책을 수립하는 대신에 트럼프는 중국에 책임을 돌리기에 바쁘고,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부활절 이후의 경제활동 재개’를 거론하는 수준이다. 이 무책임, 이 인명 경시는 단기적 이익 본위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는 미국 지도층의 정신상태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지속적인 ‘중국 탓하기’가 중국인과 외관상 식별이 가지 않는 모든 재미 아시아계 소수자들을 정신 나간 인종주의자들의 폭언·폭력에 노출시키고 있는데, 트럼프는 개의치 않는다. 종족적 소수자, 그리고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노약자층 등의 인명과 인권을 더 이상 보호하지 못하고 보호하려 하지도 않는 국가가 세계의 ‘리더’를 여전히 자처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를 거치며 진단키트의 수출 등으로 한국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크게 올라갔지만, 미국의 위상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시장’의 신화다. 시장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공급할 수 없음을 우리는 여실히 본 것이다. 몇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이나 소비 진작을 위해 주민들에게 국가가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급진적 주장’으로 인식됐지만, 지금 미국같이 비교적 보수적인 나라마저도 주민들에게 현금 지원을 할 예정이다. 상당수 항공사 등이 어차피 부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항공업과 같은 사회 필수 시설의 국유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위기의 초기지만, 시장만으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음은 이미 명백해졌다. 앞으로 세계 경제의 재가동·회복을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개입과 국가 주도의 재분배 정책이 불가피할 것이다.

시장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가 공공시스템의 부실을 떠안게 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제 팬데믹 위기의 ‘약한 고리’가 되었다. 그들을 포함해서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과거 신자유주의 시대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불황 내지 공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을 방불케 할 수준의 국가적 경제 개입이 필요할 것이고, 앞으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함께 공공부문, 그리고 재분배 장치들이 대대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이 세계적 추세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앞으로 공익·공공성 위주의 경제 모델과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할 것이냐의 여부보다는, 한국형 복지국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가 사회적으로 핵심적 화두가 될 것이다.
                                                     (한겨레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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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13 14: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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