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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에너지. 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10여 년 전부터 쓰겠다고 공표해 놓고 여태 쓰지 못한 책이 있다.

식량(food), 에너지(energy), 물(water)에 관한 책으로 영어 첫 글자들을 묶으니 'FEW', 즉 '많지 않은'이라는 뜻이 된다. 

제목이 '끝내준다(fantastic)'며 미국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았다.

환경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물 걱정부터 했다.

지구는 특별히 물이 풍부한 행성이지만 97%가 짠물이며 나머지 3%에서도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은 기껏해야 1% 정도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석유와 천연가스는 50년, 그리고 석탄은 100년 남짓이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다.

내가 식량을 에너지와 물보다 앞에 두는 것은 단지 제목을 멋있게 만들려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 물과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지만, 나는 식량 문제가 훨씬 더 시급하고 충격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석유나 석탄을 구할 수 없으면 급한 대로 장작을 땔 수도 있고, 경제성이 문제일 뿐 담수화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다. 하지만 식량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미래학자들은 한결같이 조만간 세계적 식량 대란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그런 식량 대란이 닥쳤을 때 가장 곤혹스러워할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식량 해외 의존도가 가장 극심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세계화 바람을 타고 우리는 쌀과 달걀을 빼곤 거의 모든 걸 해외에서 사다 먹는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식량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계획도 세워 놓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두르기 바란다. 유치한 발상일지 모르지만 바이러스 진단 키트를 지원해주며 식량 수입의 우선권을 확보하기 바란다. 가족은 멀뚱거려도 엄마는 최소한의 사재기를 해둔다. 국민은 멀뚱거려도 국가는 적절한 식량을 사재기해둬야 한다.

                                                 (조선일보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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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4-13 14: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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