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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한국민주주의가 결정적 변곡점을 맞고 있다. 그것은 한국민들이 정치경력이 전무한 검사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한국인들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민주공화국을 선택하고 수호하는 역량과 지혜를 발휘한 바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경제발전을 위해 군사주의를 감내하였다.


한국인들이 국민주권과 민주정부를 회복하였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 제약은 사라졌다. 기본 자유와 인권, 주기적 선거, 대의 정부 교체, 복수 정당제, 언론자유의 본질은 파괴되지 않았다. 국제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지표는 아시아 최고 순위다. 그런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두 가지 촉진 또는 저항 요소와 대면해왔다. 시장주의와 사법주의였다.


시장경제와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의 핵심 지탱 요소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한 긴장 관계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이 요소들로부터 크게 위협 받는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법률가를 선택하였다. 법률가들은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 유죄와 무죄, 기소와 변호를 택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법주의의 본질이다. 다수와 소수, 여론과 이견, 타협과 균형을 존중해야 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원리다. 


민주화 이후 사법주의는 계속 팽창하였다. 첫째 판사·검사·변호사 출신들의 최고 권력 도전 및 의회와 정부에서의 과대 대표였다. 둘째 정치의 사법화였다. 의회·선거·정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헌법소원·고소·고발을 통해 전부와 전무의 양자택일로 몰아갔다. 셋째 국정운영에서 정치 대신 검찰과 법원에의 의존이 커지면서 이들 역할의 비약적 증대였다.


의회주의자 김영삼은 김대중 비자금이 폭로되었을 때 검찰의 민주주의 좌우를 허용하지 않았다. 김대중은 검찰을 통한 과거청산은 커녕 자신을 탄압한 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게 기념사업 지원, 그리고 용서와 화해로 포용하였다. 필자는 두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생생하게 들은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부터 사법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 중심이 되었다. 


이전 정부정책의 특검단행, 대통령 탄핵소추,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이명박)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이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직전 대통령 검찰수사와 자살이,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 탄핵과 수사·구속이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 성공과 검찰개혁 실패는 사법주의 확대의 토대였다. 


게다가 특정 개인을 연속 파격적으로 승진시켜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맡긴 바, 이는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원리에 전혀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심지어 진영경계를 넘어 그 개인이 권력도전의 최고 후보로 떠오른 시점에서조차, 제압하지도 포용하지도 못한 채, 징계라는 관료적 사법적 조치만 반복하다 더욱 키워주고는 정치적 민주적 해결의 기회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근대 최고의 철학자는 법률가가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은 철학자보다 더 위험하다고 잠언한다. 조선 500년 국가틀을 정초한 최고 경세가는 법률가들이 정치를 하면 안된다고 반복 언명한다. 로마의 쇠망에 대한 최고의 고전을 남긴 역사학자는 법과 법률가들의 득세를 경고한다. 20세기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로 불린 학자는 사법주의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통찰한 바 있다.


해법은 대화와 타협, 민주주의를 우선하는 법치다. 즉 민주적 법치를 통해 사법주의의 위험을 벗어나길 호소한다. 첫째 24만표와 0.73%포인트 격차, 둘째 의회의 여소야대, 셋째 당선 이후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 낮은 기대를 반영하여, 오직 노겸과 통합, 연립과 연합의 길을 가기를 호소한다. 어떤 정책과 공약도 지시·수사·직진·명령·양자택일을 중시하는 법규주의로 국가를 운영해선 안된다.


문재인 정부는 사법주의를 반복한 결과 검사 대통령이라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고 물러난다. 근대 이후 선진 민주주의 역사에서 검사가 최고 지도자로 직진하는 전례 없는 실험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다. 전례가 없기에 불안하지만 첫 길이기에 반대 가능성도 있다. 즉 사법주의와 검찰주의를 내려놓고 국민의사·의회주의를 존중하는 만큼 성공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의 이중 반객위주(反客爲主) 위치를 해체하고, 적폐청산과 검찰개혁 두 국면 모두의 자기 지지기반을 연결하는 대통합과 대연정의 정치가 필수다. 자신을 여기까지 밀어올려준 앞 정부의 적폐청산·사법주의·검찰중심 국정운영과 결별하길 호소드린다. 물론 출신도 즉시 잊어버리길 빈다. 요컨대 자기부정에 성공의 길이 있다.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진보세력에겐 엄히 책임을 묻고, 최소 승리를 통해 보수세력과 당선인에겐 최대 겸손과 통합을 주문하고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매우 커졌고, 주기가 극도로 빨라졌다는 점이다. 


최초로 절반 이상을 득표한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은 이번에는 촛불로 집권한 정부를 단 한번만 기회를 주고는 교체해 버렸다. 이 무서운 국민의 효능감이 실망감으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중앙일보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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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06 17: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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