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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근 / 4대 강국의 전략적 이익을 먼저 알아야 한다
  • 기사등록 2022-03-30 16:29:58
  • 기사수정 2022-03-30 17: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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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방개혁연구소장






지난 몇 년 동안 국가안보 문제를 연구하며 놀라는 사항이 있다. 한국 안보 전문가들의 북한 핵 문제, 전작권 전환 등 한반도 안보에 관한 사고가 대부분 남북한으로 국한되어 있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 관한 주변국들의 인식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매우 반가운 내용의 글을 접했다. 2022년 3월 29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신봉길 전 인도 대사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 신 대사는 한국인들이 국가안보를 제대로 지키려고 한다면 국가안보에 관한 강대국들의 인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우려하는 이유, 러시아가 나토의 우크라이나 가입을 자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생각하는 이유 등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 대사는 이렇게 제안했다. 

첫째, 한반도의 외교·안보 이슈를 좀 더 큰 스케일의 국제정치적 안목에서 볼 때가 되었다. 제국에의 향수 같은 강대국의 아이덴티티 정치(identity politics), 스트롱맨 지도자들의 심리까지 관심을 갖고 분석해야 한다. 동맹·미사일 방어 체계 등 그들의 거대 담론을 알고 우리 외교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둘째, 동맹의 문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다. 한·미 동맹이 우리 외교 안보의 초석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 이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주국방론, 자강론의 의미도 더욱 새겨야 한다. 중국이 ‘인도태평양판 나토’로 간주하는 쿼드(Quad) 참여 문제도 신중해야 한다.


셋째, 미사일방어망 참여 문제다. 미국·러시아·중국은 모두 미사일방어망 문제에 있어 극도로 민감하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한국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교·안보 전략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한국은 한때 제국을 유지했던 4강이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나라다. 좋든싫든 강대국 국제정치, 패권정치의 속살을 알고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신봉길의 인식은 매우 특이한 듯 보인다. 필자가 2021년 7월 발간한 <<strong>한반도와 강대국 국제정치: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1943-1954)>란 책의 집필을 본격으로 시작할 당시인 2020년 10월 한국국방연구원 소속 박사 몇 명을 대상으로 책의 구상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 나는 미국이 국가안보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국이 아닌 또 다른 패권국의 부상 저지이며, 항공모함 및 전략폭격기와 같은 과학기술 발전으로 이 같은 패권국 부상 저지 차원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라시아 대륙 주변 주요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이처럼 미국이 미군의 주둔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 지역에 한반도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미군 주둔 방식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한반도를 분단시킨 후 남한 지역에 반공성향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를 수립해야 할 것이란 이유로 여수/순천, 제주도, 대구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으며, 6.25전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3년 동안 매우 참혹한 방식으로 전쟁이 수행된 것도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등 지구상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대에서 박사를 받은 어느 B연구원의 반응이 매우 흥미로웠다. "내용이 논리적으로 전혀 모순이 없어 보이는데, 이렇게 접근하는 경우를 처음 보았습니다. 왜 아무도 이처럼 접근하지 않았을까?"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국인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기고한 논문 또는 보고서 가운데 강대국의 거대 담론은 고사하고 한반도에 관한 이들 국가의 시각을 반영한 경우를 필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한반도가 주변국 입장에서 전략적 이익(Strategic Interests)에 해당하는 지역임을 거론한 글도 거의 없어 보인다. 1943년 당시 한반도가 분단된 것도, 아직도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것도 주변국 입장에서 한반도가 전략적 이익에 해당하는 지역이기 때문인데, 한국인들의 논문 가운데 '전략적 이익'이란 개념이 등장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한반도에 관한 미국의 군인을 포함한 안보 전문가들이 저술한 논문과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전략적 이익이란 용어인데 한국 안보전문가 가운데에는 이것을 언급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이 남북통일은 물론이고 북한 비핵화에 극구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도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가 전략적 이익에 해당하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국회도서관에서 전략적 이익이란 키워드로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인하대학교 남창희 교수가 저술한 "남북통일과 일본의 전략적 이익"이란 제목이 거의 유일한 듯 보였다. 그런데 일본의 아베(安倍晉三)총리는 일본 입장에서 한반도가 "전략적 이익"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알면 소름 끼치는 발언이다. 그 말의 의미는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이 일본의 적성국, 예컨대 중국이나 러시아로 넘어가는 경우 일본 안보가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남북통일을 극구 반대한다는 의미다. 일본 총리도 알고 있는 이 용어를 한국의 안보전문가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그 책을 출간할 당시 몇몇 지인들은 필자가 크게 다칠지도 모르겠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이는 한국인들이 왜 한반도 관련 주요 안보 문제를 강대국의 거대 담론을 배제하며 접근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부분으로 보였다.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1945년 9월 8일 이후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국 입장에서 선한 목자(牧者)라고 교육을 받았으며, 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미국인이 저술한 어느 논문에서는 이처럼 기술하고 있다. 미국이 미 국익 측면에서 한반도를 분단시켰다는 사고는 국가보안법 대상이었던 것이다. 국가안보를 연구하는 대부분 연구자들이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인식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에 이같은 측면이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의 인식과 거대 담론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한반도 안보 문제 연구가 공염불과 다름이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국방대학, 육군, 해군 및 공군 대학, 한국국방연구원 등 국가안보 관련 연구기관과 학교에서 한국 안보에 관해 저술한 논문이 대부분 비밀로 분류되어 있는 이유에 이들 논문이 주변국 인식을 배제한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논문이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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