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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논설실장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당선됐을 때 측근들의 '퇴장 선언'이 신선했다. 대선 1주일 뒤 양정철은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며 "새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치에 뜻이 없다'던 문 대통령을 선거에 나서도록 설득한 그야말로 핵심 측근 중 측근이니 놀랄 만한 선언이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문 대통령 취임 당일 "자유의 먼 길을 떠난다"며 출국했다. 이들은 줄곧 '친문(親文) 패권주의' 비판을 받던 인물들이다. "집권하면 똘똘 뭉쳐 국정을 농단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돋보였던 '퇴장 선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저는 정치 신인이기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고 어떠한 패거리도 없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1년 전만 해도 정치권 밖에 있던 인물이 드라마틱하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온몸을 던져 헌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가깝게 보면 '윤핵관'도 있고 멀리 보면 '윤석열 사단'도 있다. 양정철은 5년 전 "나서면 패권이요, 빠지면 비선이라는 괴로운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윤 당선인 주변에도 그런 공격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대한민국 읽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순간 그다음에 전개될 형국은 이미 대부분 결정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종석을 비서실장으로 쓰는 순간 그다음의 많은 것을 이미 암시했다'고 썼다. 최측근이 떠난 자리를 문재인정부는 무엇으로 채웠는가. 단단한 이념의 벽부터 높이 쌓았다.


전문가와 과학은 밀려났다. 책임정치도 실종됐다. 엉터리 주택정책으로 집값이 유례없이 폭등하는데도 장관은 3년6개월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역대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이라는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와 반대로 쓴소리하던 경제부총리, 검찰총장, 감사원장은 차례로 사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을 담은 액자를 청와대 비서관실에 돌렸다. 단지 장식품일 뿐이었다. 정작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시할 특별감찰관은 5년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DNA"까지 운운하면서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행세했다. 이번 대선은 그에 대한 심판이다. 20년 집권설은 고사하고 10년 주기 교체설도 지키지 못하고 5년 만에 정권을 내놓았다.

윤석열 캠프에서 일한 사람들도 "정권교체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럼에도 '퇴장 선언'은 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영화의 대사처럼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등을 떠밀어야 할까. 윤 당선인은 "일 잘하는 사람을 끝까지 쓴다"고 했다. '윤석열 사단'은 그로 인해 생겨난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능력 있는 인물을 중용한다는 데 반대할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서로 편안한 유형이 따로 있는 법이다. 자신과 호흡이 더 잘 맞는 인물과 일해야 효과도 좋을 것이다. "윤석열이 틀렸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강직한 사람이라면 더 가까이 두라고 권장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견제와 감시가 작동하도록 하는 일이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 대통령 시대를 끝내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포기한 일이다. 윤 당선인은 특별감찰관 임명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5년 내내 공석으로 방치한 자리다. 대통령과 측근들의 벽을 낮추고 견제장치를 가동하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스스로를 투명하게 드러내 국민의 감시를 받고, 합리적인 비판에는 뒤로 물러설 줄도 알고, 잘못된 일에는 단호하게 책임을 묻는다면 자연스럽게 성공한 정부가 되지 않겠는가. (매일경제 2022.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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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29 17: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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