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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민주당 지지자 중 상당수는 이재명 후보에게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힘 지지자 중 상당수도 윤석열 후보에게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아주 작은 연결이나 관계를 통해 애착을 쌓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특정 정당, 특정 후보를 지지하게 됩니다. 지지란 애착으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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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고통이 됩니다. 이재명 후보에게 애착을 갖다보면 윤석열 후보가 더욱 미워지고 윤석열 후보에 애착을 갖게 되면 이재명 후보가 더욱 미워집니다. 선거가 끝나고 자기가 애착을 가진 후보가 낙선했을 경우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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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ESD·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세상이 매우 나빠질 것 같은 불안감에 빠집니다. 윤석열 후보 지지자 역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지극히 퇴보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애착은 걱정을 증폭시키기에 선거 후엔 많은 사람이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낙선하면 마치 자신이 낙선한 것 같은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기도합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에 지역갈등이 개입된 국가입니다. 5년에 한 번씩 지역적으로 한 곳은 축제분위기이고 한 곳은 침울한 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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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 편을 당선시킨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선거는 운동경기가 아닌데도 자기편 선수가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듯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유권자는 마치 주주가 CEO를 선발하듯이 이재명, 윤석열을 놓고 고민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치 주주가 두 명의 사장 후보를 놓고 누가 누가 우리 주주에게 더 이익일까를 고민하듯이 투표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편인 이재명, 내 편인 윤석열이라고 생각하면 애착과 집착이 결국 고통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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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한 명의 사장 후보를 매도하면 결국 주주의 손해입니다. 누가 더 좋은 사장일까를 고민할 때는 사장 후보에 대한 부당한 공격은 삼가고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 편이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면 상대를 모함해서라도 내 편을 당선시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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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정치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 정치인은 이익을 봅니다. 수명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정치인은 수명이 긴 직업이라고합니다. 남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은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이 장수한다고 농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해서든 이기기 위해 온갖 모함과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 정치인보다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국민이 더 많습니다. 자기편이 이기기 위해 온갖 모함과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 언론인도 정치인과 다를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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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잘할지 못할지 아직 모릅니다. 저의 과거 경험으로 보면 사람에 대한 예측은 잘 맞지 않더군요.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한다면 우리 국민은 5년 뒤에 다시 투표로 응징할 것입니다. 잘한다면 정권재창출이 되겠지요. 과거 독재시대와는 달리 우리는 표로 확실히 정치인을 응징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이재명 후보와 성은 ‘정’씨요, 이름은 ‘권교체’인 ‘정권교체’ 후보와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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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에게 애책을 갖는게 결국 고통이 되듯이 정권교체로 인한 장미빛 희망을 갖는 것도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투표하고 나서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과연 손가락이 몇개나 남아 있을까요? 정권교체로 세상이 조금 좋아질 수도 있고 조금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갖는 것도 애착입니다. 희망할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이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지켜보는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담담하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또 5년을 지켜보면서 정치인과 언론보다 더 똑똑한 국민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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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행자가 깨달은 경지에 도달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매우 궁금했습니다. 불교공부를 하며 항상 깨달음의 경지가 갖는 특징에 대해 경전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습니다. 경전에 드디어 혜안을 주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깨달으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라는 구절입니다. 그 다음 구절이 더 절묘합니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려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떠나야 한다’ 이 구절이야 말로 우리가 새겨들어야할 내용입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떠나서 후보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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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누가 누가 덜 나쁜가의 판단이라면 두 후보 중 한 사람이 덜 나쁜 후보일 것입니다. 다만 수학문제와는 달리 여기에 정답은 없기에 우리는 투표를 통해서 결정합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떠난다고 해서 ‘둘 다 똑 같다’라는 식의 양비론에 빠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푹 빠져 ‘누가 누가 덜 나쁜가’를 판단하는 것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떠나 ‘누가 누가 덜 나쁜가’를 판단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정치인이 우리 국민보다 더 오래 사는데 우리는 왜 정치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정치가 우리를 아무리 실망하게 할지라도 애착과 집착을 떠나,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면 고통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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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마음은 문제지만 사랑하는 마음이야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얼마나 많은 문제가 사랑 때문에 생기는지 모릅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5년 동안 윤석열 당선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 미움의 감정을 떠나 있는 그대로 봅시다.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우리에게 손해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민주당을 위해서도 아니고 국민의 힘 당을 위해서도 아니며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 행복,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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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20 22: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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