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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빙의 승부에서 패자만 보이고 승자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이 48.6%에 달하지만, 기권율을 합산하면 37.4%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당이 턱밑까지 추격한 것을 볼 때 선거일이 하루 이틀 후였거나 결선 투표가 있었다면, 국민의힘이 이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20~30대 여성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해 갈라치기가 되치기당했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선 후 일성으로 강조한 ‘통합’은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물론 병은 치유되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예상외로 선전했다는 이유로 패하지 않았다고 자위할 수 있는가. 촛불 혁명을 계승한 정부라고 자부한 문재인 정부는 2년을 허송세월하면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안기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그 결과는 또 한 번의 허송세월이었고, 이번 선거는 그에 대한 심판이었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흠결 많은 후보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면 호기만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제3지대도 패배했다. 사전 투표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배신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지지율이 3%에 훨씬 못 미쳤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제1 진보 정당이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이동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정의당은 안철수 지지로 대표되는 제3지대 열망을 흡수하지 못하고 전통적 지지층조차 전략 투표로 빼앗긴 것이다.


권력 구조 개편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정치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은 양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96%가 넘는다는 것은 권력 구조 개편의 패배를 의미한다. 사실 정의당조차 권력 구조 개편을 전면화하지 않았다. 세 정당의 공약 모두 기존 구조의 리모델링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권력 구조 개편 여부가 대선의 주요 균열 축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3지대 정당에 대한 득표율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표출되었다면, 권력 구조 개편의 불씨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3지대 정당이 내각제나 비례대표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양대 정당의 득표율이 압도적으로 나타남으로써 적어도 단기적으로 권력 구조 개편 논의가 재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대 정당의 압도적 득표를 인민 주권의 일부 패배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당 후보들이 여의도 정치에서 배출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양대 정당은 신선하다는 착시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매우 영리한 후보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기득권 정치 엘리트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득표에 유리하면 서슴지 않고 상대의 공약을 베끼고 집권하면 실현 가능성이라는 명분으로 공약을 뒤집거나 정책과 무관한 네거티브 공세로 경쟁을 극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승자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당선인과 득표수로 가시화된 승자 속에 보이지 않는 실질적인 승자가 있다. 무엇보다 인민 주권의 패배라는 이면에 기득권 엘리트의 승리가 숨어 있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든, 그들은 엘리트를 대표해 왔다. 양대 정당의 극한 대립은 엘리트의 궁정 게임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에서 표현된 집단 지성은 반만 눈을 떴다. 뜨지 않은 반 꺼풀 속에 권력 구조 개편과 엘리트 정치 극복이 가려져 있다. 반 꺼풀 열린 눈동자는 민주당의 오만과 국민의힘의 독선, 정의당의 진부함을 보았다. 정의당에는 각고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에는 행정부와 의회의 상호 견제를 통한 합리성을 주문했다. 대선의 연장전이 될 2024년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 의회에 대한 중간 평가가 치러질 것이다. 


그러나 협치와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궁정 게임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현 권력 구조로는 소외된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대 정당의 협치가 게임의 틀과 규칙을 바꾸는 고육지책이라도 강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원적인 계기와 동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촛불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잘못이 과연 정부에만 있을까. 촛불 혁명에 불을 댕긴 것이 국민이라면, 그것을 완수하는 것도 국민이다. 국민이 유권자로서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선택 후 할 일을 고민해야 할 때다.  (경향신문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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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16 17: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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