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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계명대 교수 , 사회학





“무속이 대통령 선거를 노골적으로 좌우하고 있습니다. 유력 후보가 스스로 책임지고 결단할 일을 점쟁이에게 묻고 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물론 오랜 세월 가난한 사람들의 병과 한(恨)을 어루만져 주던 무속의 역사를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보편성, 타당성, 신뢰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비이성적인 주술에 국가 대사를 맡겨야 하겠습니까? 지도자가 자신의 가치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 밖의 초자연적 주술에 의지해서 중대사를 결정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종교인이 발표를 마치자 무속인이 바로 반발했다.

“무속, 무속 그러는데, 정확히 말하면 무교입니다. 무교도 가톨릭, 개신교, 불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종교란 말입니다. 사실 우리 종단은 나라에 정식으로 등록한 합법적인 종교단체입니다. 그런데 몇몇 법사가 대통령 후보 뒤를 봐준다고 해서 주술 정치를 한다며 무교 전체를 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초자연적 주술 어쩌고 하는데, 그건 무교만의 속성이 아닙니다. 예수도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렸잖습니까? 그건 초자연적 주술 아니고 뭡니까? 왜 무교만 가지고 허황한 주술이라고 비하합니까?”


여기저기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무속을 어디 종교에 갖다 붙이나? 부적이나 써서 복을 비는 판에.”

“아니, 기독교는 안 그런가? 헌금 많이 내면 복 받는다고 부추기잖아. 그 돈 받아다 대형건물 짓고, 나중에는 자식에게 물려주잖아.”

“아니 정치인이 법사로부터 도움받는 게 어때서? 우리도 이사 갈 때 점집에 가서 길일(吉日)을 받고 하잖아. 결혼할 때도 기도발 좋은 목사한테 가잖아. 뭐가 다르다는 거야?”


“그러게. 명진 목사가 정치하면 괜찮고, 건진 법사가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딨어? 선거 때마다 요리조리 붙는 종인 책사한테는 왜 아무도 뭐라 안 해? 주술사 행세는 똑같은데.”

마지막 말에 모두 키들거리자, 보다 못해 사회학자가 나섰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주술과 종교를 확실히 구분합니다. 주술은 현세와 근본적인 긴장을 형성하지 않습니다. 현세를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기 때문입니다. 주술사는 주술을 이용해 현세에서 행복과 쾌락을 누리게 해준다고 약속합니다. 반면 예언자나 구세주는 현세가 악하다며 진짜 세상이 따로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도 보통 주술적 카리스마를 휘두름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죠.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도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렸죠. 그런 점에서 주술사는 예언자와 구세주의 전신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주술을 부린 것은 다른 사람도 물 위를 걸으라고 한 게 아닙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라고 되살린 것도 아니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주술을 사용했을 뿐이죠. 


진정한 종교는 현세를 초월하는 이상적 가치를 설정하고 일상의 삶을 체계적으로 조직해서 그 가치를 추구합니다. 당장 현세의 행복과 쾌락을 거부하고 다른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 고통을 이겨내려면 내면 깊이 그 가치를 믿어야 합니다. 이 점을 잊으면 종교는 주술로 떨어집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가 딱 이 모양입니다.”


누군가 물었다. “그럼 주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치란 무엇입니까?” 사회학자가 다시 답했다.


“정치도 주술과 마찬가지로 현세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주어진 그대로의 현세가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초월적인 이상적 가치를 설정합니다. 다른 세상이 아닌 바로 이 세상에다 말입니다. 가치는 신념을 가지고 헌신하는 자에게만 살아 있습니다. 


우리 정치가 당장 주술적 복리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그리게 해줄 이상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이유입니다. 정치가는 내면으로부터 이 가치를 신앙하고, 삶을 체계적으로 조직해서 이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위기 때마다 요술 단지에서 비단 주머니 꺼내어 펼쳐 보이는 주술가에게 휘둘릴 이유가 없겠죠.”  (경향신문 2022.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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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2-13 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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