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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니스트




  전선언 추진에 막바지 안간힘을 쓰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망스런 국제환경이 조성되면서 추동력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별로 내켜하지 않는 미국과 어렵사리 문안조율은 마무리했다고 하는데,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으로 해석할 만한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비공식 창구를 통해 북한에 한미 간 조율한 종전선언 뼈대를 이미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이다.


게다가 미 행정부는 16일 ‘2020년도 국가별 테러보고서’ 명단에 북한을 다시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테러지원국 굴레를 벗기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 하에 있는 만큼 새로 부과될 실질적 불이익은 없다 하더라도 ‘불량국가’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는 상징성이 크다.


 미, 대화상대 북한에 ‘테러지원국’ 굴레 씌우며 압박 기조


미국이 겉으로는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해결’을 내세우고 있으나, 북한을 대화로 유도할 제재완화 등 실질적 조치를 먼저 취하지는 않겠다는 강경한 압박기조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적대시정책 철폐’를 무시하는 모습이어서 북미대화 재개가 더 멀어졌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남북한과 함께 종전선언 당사국으로 꼽히는 미국-중국 갈등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되 정부 사절단은 보내지 않는다는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선언으로 한층 격화된 것도 악재다.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에 힘을 실으려던 청와대의 구상도 헝클어졌다. 정부는 종전선언과 ‘외교적 보이콧’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으나 추동력 약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동참 압력에 정부가 직전 동계올림픽 개최국임을 명분삼아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은 다행이다. “철저하게 대한민국 국익 차원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는 설명 자체가 우스운 당연한 조치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달라진 위상을 과시할 장으로 공들여온 중국은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을 ‘축제에 재를 뿌리는’ 횡포로 받아들이며 보복을 공언한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터에 보이콧 명분으로 삼기에 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인 유럽 동맹국들이 동참할 뜻이 없음을 밝히면서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극소수 동참에 그칠 전망이다. 미국의 줄 세우기 압력에 눈치를 보던 국가들이 부담을 덜게 되면서 빛이 바래는 분위기다.


종전선언 추진에 악재가 돌출하고 지지부진해지자 거부감을 보이던 국내외 반대세력들의 반격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70년이 돼가는 비정상적 종전상태를 끝내기 위해 전쟁 당사국간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당위론과 한반도평화 입구로서의 종전선언 추진에 명분상으로 밀리던 차에 임기 말 외교력 낭비니, 대선용 이벤트 추진이니, 한미동맹 약화 우려니 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의 회의적 흐름과 국내 보수진영이 궤를 같이 하는 느낌이다. 대통령 선거를 80일 남짓 앞둔 정치판에서 주요 후보와 가족들의 도덕적 흠결이 불거지며 네거티브 공세가 치열해 한반도평화를 이슈로 한 본격적인 정책대결은 아직 펼쳐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야 말로 주요 정치세력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 요소다.


 분단체제에서 기득권 누리며 변화 거부하는 세력의 반격


한국전쟁이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불안정하게 봉합된 분단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누려왔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득권세력과 불합리한 상황을 타파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세력 간 쟁투라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선이 온갖 잡다한 세력이 총결집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주축을 이루는 핵심세력의 성격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 폭등, 청년 취업난 등으로 현 집권세력에 실망한 사람들, 대장동 투기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며 민주당도 기득권의 일부로 편입돼 ‘내로남불’에 함몰된 행태를 보인다며 비판하는 세력 등등이 두루 가세하기는 했으나, 정권교체 기치의 핵심 중추는 그동안 기득권 카르텔을 유지해온 세력이다.


종전선언 추진뿐 아니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연합군사훈련, 한미동맹, 대중국 균형외교, 남북대화 추진 등 한반도평화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외교갈등 근저에 세력간 다툼이 깔려 있으며, 그 결과는 한반도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내일신문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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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27 16: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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