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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리스 신화에는 ‘판도라’가 등장한다. 신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신, 제우스가 여러 신들을 총동원하여 만든 최초의 여자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판도라’의 뜻이 ‘모든 선물을 다 받은’이니, 그 성격이나 생김새를 가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판도라의 탄생 과정은 그야말로 극적이다. 우선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흙에 물을 섞어 여신과 닮게 빚어낸 모습에 목소리와 힘을 불어 넣었다. 아테나 여신은 이 형상에게 손수 만든 옷을 입히고 허리띠를 둘러주고 면사포까지 씌워 주었다. 

그러자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과 뇌쇄적인 매력을 덧붙여 주었고, 신들의 메신저인 헤르메스는 사기성, 아첨, 간교함 같은 심성을 깊이 새겨 넣었다. 제작과정(?)이 끝나서 모습을 드러낸 판도라는 기막히도록 아름답지만 매우 교활하고 참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들의 신 제우스는 이런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선사한다. 말이 선사지, 실제로는 흉측한 재앙의 씨앗을 건넨 것이었다. 제우스가 에피메테우스에게 크게 앙심을 품고 있어서 멋지게 보복하려고 수를 쓴 것이니까. 이런 흉계를 잘 알고 있었던 프로메테우스(인간에게 불을 줌으로써 제우스의 크나큰 노여움을 산 주인공)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절대로 제우스의 선물을 받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보자마자 얼이 빠진 나머지 판도라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판도라에게는 온갖 악, 고통, 나쁜 것들이 다 들어있는 상자(일설에는 ‘항아리’라고도 함)가 주어졌는데,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엄한 요구가 있었다. 호기심 많고 참을성 없는 판도라는 결국 그 상자를 열고 만다. 


상자를 여는 순간 온갖 사악한 것, 나쁜 것들이 공기처럼 빠져나와 사방으로 흩어진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뒤늦게 상자를 닫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만다. 상자의 맨 밑바닥에 남아 있던 ‘희망’만이 아직 새어나오지 못하고 남아 있을 뿐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표현에 얽힌, 널리 알려진 신화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도대체 인간의 호기심은 어떤 것인가 하는 강한 의문을 품게 된다―이 역시 또 다른 호기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또한,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하고 집요하게 작동하는 게 호기심이다. 어쩌면 인간의 인지구조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모른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간단한 연상 작용조차 이와 비슷한 경향이 있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코끼리는 절대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 코끼리를 더욱 연상하게 된다고 한다. 《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은 따먹지 말라고 신이 엄명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에덴동산을 떠나 고달프고 슬픈 인류사의 새벽을 열었다. 

 

인간의 호기심은 대체로 참을성, 신뢰성과 비교되면서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꾹 참지 못하니까, 믿음직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니까 어떤 것을 경망스레 알려고 덤비다가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지식과 과학 기술, 문명은 결국 호기심의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기심은 거의 본능적으로 솟아나는 것이고, 해소할 방향을 올바로 찾다 보면 지혜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호기심은 ‘판도라의 상자’ 신화의 제1주제는 아니다. 이 신화의 핵심 주제는 오히려 ‘희망’이다. 다른 나쁜 것들이 다 활개를 칠 때조차,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희망’이라는 이야기는 참으로 희망적이다!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일 뿐이어서 이루어질지 그렇지 않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삶의 의욕이라든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려는 도전 정신을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 단테가 지옥을 ‘희망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규정하는 점에 공감하고 경탄하게 된다.

 

한 해를 넘기는 세월의 건널목에서 가장 흔히 나오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라는 표현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는 항상 다사다난해왔다.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마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거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 해소된 사회는 존재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 점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인간은 오늘보다 향상된 내일을 이루고자, 또는 부닥친 난관을 좀더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이니까.

 

희망 없는 노력은 맹목적인 것이고, 노력 없는 희망은 공허하기만 하다. 희망은 한낱 망상으로 끝날 수 있는가 하면, 뚜렷한 현실로 전개될 수도 있다. 막연하고 개인적인 희망을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구체적 현실로 바꾸기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자. 우리에게 부과되는 여러 문제를 진지한 자세로 탐구하고 개선과 발전을 향한 지혜를 꾸준히 가꾸도록 하자.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때 희망은 점차 하나의 좋은 현실로서 그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겠는가. 밝아오는 2022년이 고약한 코로나19로 심신이 지친 우리 모두에게 진정 인간다움을 키우고 보람을 누리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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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27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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