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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다음은 어떤 ‘엄숙한 명령(?)’의 일부다.

 

“그의 장례는 절대로 ‘국장(國葬)’으로 치러서는 안 된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장 등 그 어떤 국가기관의 장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군대의 경우 예외적으로 참석을 허용하되, 음악이나 일체의 주악이 연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에게 훈장 서훈이나 표창, 작위 부여 등은 일절 금한다. 장례식에서는 어떠한 연설도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의식은 침묵 속에 진행돼야 한다. 그의 묘비에는 이름과 출생 및 사망 연도만 써야 한다. 그를 국립묘지에 매장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의 고향에 있는 일반 시민의 공동묘지에 묻어야 한다.” 

 

내용만으로 이런 명령을 내린 의도를 한번 추측해 보자. 많은 국민에게서 대단히 존경받는 국가적 인물이 죽었지만 장례가 성대히 치러지는 걸 내켜하지 않은, 시기심에 가득 찬 막강한 권력자가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장례식을 사실상 봉쇄하려는 속셈이 들여다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추측은 전혀 터무니없다. 인용부호 속의 ‘그’를 ‘나’로 바꾸기만 한 것이 바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르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자신의 ‘유언’이기 때문이다. 

 

드골은 1970년에 죽었고 그의 유언에 한 치의 가감도 없이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관(棺)조차 2m 20cm 짜리 참나무 관이었는데, 그의 고향 콜롱베 마을 시민들의 관과 똑같은 크기였다. 드골은, 자신의 유언에 따라, 다운증후군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딸의 무덤 옆에 묻혔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유언도 전해진다. “(내) 각막은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하고 기타 장기는 의대 실험용으로 제공하라. 장례는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라. 유해 고별식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조문소도 설치하지 말라. 시신은 화장하고 그 뼛가루는 바다에 뿌려라.” 

 

그의 유지(遺旨)에 따라 덩샤오핑의 시신은 화장을 했고, 그의 유해는 가족들과 공산당 간부들에 의해 바다에 뿌려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 8년 전에 세상을 떠난 채명신(蔡命新) 장군(1926~2013)이 언뜻 떠오른다. 채 장군은 지금 ‘국립서울현충원 병사묘역’에 묻혀 있다. ‘장군묘역’이 아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영웅으로 꼽히는 전설적인 장군이 1평 면적밖에 안 되는 병사 묘역에 다른 병사들과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다(장군 묘역은 1인당 면적이 8평이다). 고인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간곡한 유언을 남겼기에 이런 유지를 반영하여 병사 묘역에 안장했다고 한다.

 

대단한 지위나 명성을 누린(또는 누리고 있는) 사람이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거나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나는 이런 말에 반신반의한다. 인간은 본래 허영심이나 허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도 거짓된 언행을 버리지 못한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골은 오직 조국 프랑스의 영광과 번영만을 위해 살았다. 덩샤오핑 없이도 중국이 오늘날 G2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채명신 장군은 평생을 조국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헌신했던 인물이다.

 

물론 깐깐히 따져보면 이들에게도 업적 못지않은 잘못이나 허물이 있을 것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 역시 짙은 게 엄연한 세상 이치니까. 하지만, 이런 공과(功過)를 떠나 그들은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는 말 그대로 허영이나 허욕에서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 수준을 마을 뒷산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이들의 고결함은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장엄한 높은 산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존경을 넘어 외경심마저 갖게 하는 드높은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간절히 닮고 싶다고 해서, 또는 노력한다고 해서 아무나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 그림자라도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허욕에서 온전히 해방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즉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을 듯하다.

 

최근 약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우리나라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그들의 유언, 장례 등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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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30 17: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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