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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유통경제부장




    한 달여가 지났지만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1주기의 잔상이 뚜렷하다. 기업인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덕후'였을 고 이 회장의 통찰력과 아이디어가 새삼스레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한국 재계 역사를 통해 그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기업인도 없을 것이다.

故 이 회장의 경영능력과 인사이트를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동시에 그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적 시각과 논리도 함께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든 '공'만 있고 '과'는 없는 경우가 있을까. 이제 우린 고 이 회장을 좀 더 진지하고 사려 깊은 관점에서 들여다볼 때가 됐다. 특히 세상을 내다본 그의 통찰력과 안목은 그대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를 닦은 '위대한 유산'이 됐다.

1993년 그가 오사카를 찾았던 때 기록영상에는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 기록영상에서 고 이 회장은 "앞으로는 TV 화면이 (이만큼) 얇아져서 벽에 탁 붙을 거다. 휴대폰과 통신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통신이 이 (손바닥) 안에 들어갈 거고, 그게 모든 걸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삼성전자가 '도시락통'으로 불리던 'SH-700' 휴대폰을 내놓던 시절, 당시로는 일반인들이 하기 어렵던 상상을 그는 하고 있었다. 그가 예견했던 언급들은 또한 정확한 현실이 됐다.


뛰어난 통찰력·혁신의지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이 회장이 남긴 최대 유산
미국의 록펠러재단 같은
이건희재단·기념관 어떤가

             

자동차 사업은 고 이 회장에게 꿈이자 아픔으로 기억된다. 자동차를 좋아하던 한 마니아가 도를 넘어 뛰어든 철없는 행동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결국 삼성은 1995년 첫 볼트를 조인 지 10년도 안돼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다.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이어갔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보자. 


"자동차와 전자제품 간 경계가 모호하다"고 했던 그의 분석처럼 되레 친환경차와 모빌리티의 핵심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에 경쟁력을 더했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계열사 역량의 탁월한 결합이 돋보였을지 모른다.

최근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를 모았고, 이건희기증관 건립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게 있다. 고 이 회장의 기업가정신이다. 차제에 이건희재단과 이건희기념관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건희재단은 마치 미국의 록펠러재단이나 카네기재단, 포드재단과 같은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삼성그룹과 대주주들이 기금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고, 다양한 형태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학술연구와 사회활동을 하도록 하면 된다.

스탠더드오일의 창업자 존 록펠러를 기념해 만든 록펠러재단은 41억달러(4조8408억원)나 되는 자산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한 논문도 내놓은 바 있고, 미래 시나리오 등 매우 의미 있는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재단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미국은 물론 유럽과 개발도상국 등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다.

앤드루 카네기의 레거시도 매우 부러운 대목이다. 뉴욕카네기재단이나 워싱턴카네기협회, 카네기교육진흥재단 등 다양한 형태로 철강왕 카네기의 유산을 후대에 전파하고 있다.

이건희재단에 더해 이건희기념관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건희기념관에서 젊은이들과 기업인들이 고 이 회장을 생각하고 논하고 느낄 수 있게 하고, 그의 통찰력과 혁신 의지, 기업가정신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Lee's Library' 혹은 'Lee's Museum'으로 명명해 전 세계인에게 이건희 정신과 유산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는 대구 삼성상회 자리도 좋다. 글로벌 기업 삼성의 역사를 열었던 삼성상회는 제대로 문도 열지 못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지 오래다. 삼성상회를 대한민국 기업사의 살아 있는 유적으로 만들어보는 건 우리에게 유익한 선택이다. (매일경제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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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22 17: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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