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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대 총장






이재명 후보가 “지난 총선 때 자유한국당이 비례의석을 더 챙기기 위해서 위성정당을 꼼수로 만들었는데 민주당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잘못을 하고 말았다”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연동형 비례대표의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민주당 후보로서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말이었다.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라는 ‘저강도’ 사과이기는 하지만 모처럼 진솔한 고해성사 같은 말을 들으니 이재명 후보가 왠지 예뻐 보인다. 모르긴 하지만 이 사과로 이 후보의 지지도가 조금은 올랐을 것 같다.

                        

연동형 비례대표는 20대 국회의 아름다운 열매였다. 국민은 총선에서 온건다당제를 만들어주었고, 여러 개혁정치 실험을 하게 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과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새로운 선거제도는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대결하고 있던, 그래서 수시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여의도 정치판을 역동적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라는 명분을 내걸고 시민단체와 소수 정당이 민주당과 함께 다양한 개혁과제를 추진한 끝머리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한 정치연합을 형성하고 자유한국당을 힘으로 끌어내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성공하였다. 목적지에 이르고 보니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취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라는 말처럼 다소 너덜너덜해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민주주의의 역사적 분수령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맹점을 이용한 자유한국당의 기망이었다. 총선이 다가오자 자유한국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보수표의 의석 전환율을 최대화하려고 했다. 그걸 가능하게 했던 제도의 허술함은 통탄할 일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민주당도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전술에 대응하여 마찬가지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진보표의 의석 전환율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 노선을 선택했다.


민주당은 그것으로 국회 의석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스스로 놀랄 성과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민주당은 큰 것을 잃고 있었다. 개혁정치의 주도권은 훼손되고 급기야 국민의 탄핵을 받은 정당과 피장파장인 처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이것이 ‘내로남불’ 서사에 엮이는 단초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위성정당의 선행원인을 제공한 쪽은 자유한국당이었지만 책임은 죄다 민주당에 돌아갔다. 이는 개혁정치를 깃발로 내건 정당이 감당해야 할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고, 촛불혁명의 개혁연합에 함께했던 소수 정당을 외면한 데 따른 징벌이기도 했다.

더 큰 손실은, 그 결과로 여의도 정치가 양대 진영 대결로 불꽃 튀기는 나날을 보내야 했고, 각 진영은 강경한 지지자들에게 볼모가 되어 디딜 땅이 점점 더 좁아지게 되었으며,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다를 바 없는 정당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보기에는,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외치다가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써서 민심을 왜곡시켰다는 점에서 거대 양당은 뭐가 다르냐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이런 민심의 평결이 못내 서운할 것이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반칙에 어쩔 수 없이 방어적 대응을 하였을 뿐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의 생각을 이유 있는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재명의 사과가 마음에 와닿는 까닭은 그러한 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당은 신의와 성실 의무를 저버린 민주당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동안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선거 앞두고 지나가듯 사과를 한다니 위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단일화 밑밥이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수개월 전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표가 위성정당 방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모은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만들면서 이것을 의제로 꼽지도 않은 걸 보면 그런 의심은 합리적 충분성을 가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 연동형 비례대표의 취지를 왜곡시킨 위성정당 창당을 방지할 법을 서둘러 만들도록 지시하였으나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민주당이 자신의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이것이 민주당 쇄신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민주당도 성찰과 혁신 없이 저 높은 정권교체론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손바닥에 주술을 새길 일은 아니나 민주당이 집권 정당으로서 그동안 누렸던 일에 대해 반성하고 거듭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화끈한 푸닥거리가 필요하다. 이재명의 사과가 민주당 쇄신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경향신문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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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18 18: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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