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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 27>-치료가 필요한 성격장애인들
  • 기사등록 2021-11-08 17:08:54
  • 기사수정 2021-11-11 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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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건강 측면에서 인간의 신체 상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완전히 건강한 경우, 비교적 건강한 경우, 보통의 경우, 허약한 경우, 그리고 병이 든 경우로 펼쳐지는 스펙트럼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구분에서 질병상태는 의사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즈음, 잊어버릴 만하면 우리나라의(‘전 세계적’이라고도 해도 되겠다) 높은 지위나 대단한 재력, 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쥔 사람들의 엽기적인 행태,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언행들이 심심찮게 보도된다. 심지어 국가 통치자였거나 현재 통치자 중에, 또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거나 주위에서 그렇게 평가되는 인물 중에도 이런 행태를 드러내는 정신 상태인 사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갑질’, ‘왕자병/공주병’, 그밖의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행태들이다. 

 

언론이나 일반 여론은 이런 행태에 호된 비판과 질책을 쏟아낸다. 이러한 부정적 행태의 원인으로 인문학 교육의 소홀함 또는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도 가끔 들먹여진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들을 성격이 이상하거나 괴팍한 사람, 매우 거만스럽거나 성정이 불같이 급한 사람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단지 매우 이상하거나 괴팍하거나 거만스럽거나 급한 성정의 소유자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병이 위중한 상태다. 전문가의 치료를 제대로 받아도 치유가 될까 말까할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자기애성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이 장애(질병)는 “스스로에 대한 과장된 평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의 결여를 특징으로 하는 성격 장애”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인들은 다음 몇 가지를 철석같이 믿는다. 

‘나는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우월하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고 특권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 ‘(내가) 인정, 칭찬, 존경을 받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존경이나 특권을 누리지 못하면 도저히 못 참겠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만큼 훌륭한 사람뿐이다(그런데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한마디로, 이들이 지닌 믿음은 웅대한 자기상, 특권의식, 착취적 관계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믿음으로 철두철미하게 무장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고답적인 훈계나 인문학의 향기로 고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판단이다. 마치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에게 과음의 폐해나 모범적인 생활 태도를 교육하기만 하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 자신은 자기가 정신적으로 심각한 병적 상태에 놓여 있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 만큼 그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점은 이런 성격 장애인이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여 리더로서 사람을 관리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뒤따르는 부작용이다. 사리사욕 추구와 온갖 인간 학대를 눈 깜짝하지 않고 계속 저지르게 된다.

 

정신장애, 특히 이 글에서 말한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을 미리 발견하여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과 사회 전체를 위하는 길이다. 또한, 성격장애를 지닌 상태로는 공공기관이나 주요 조직, 집단의 고위직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국가적으로 정교하게 구축돼야 할 것이다.

 

이 모두가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점은 성격장애가 반드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치료가 요구되는 ‘명백한 질병’임을 똑똑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질병에 걸린 사람은, 그 행태는 참으로 가증스럽기 그지없지만 중병에 걸려 허덕이는 ‘불쌍한(비참한) 인간들’, 그야말로 ‘레 미제라블(프랑스어 Les Miserables, 영어로는 The Miserable)’인 게 엄연한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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