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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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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사법연수원에서 1981년에 법조윤리가 정식과목으로 채택된 데에는 미국의 로스쿨에서 법조윤리 교육이 강화된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상원과 하원을 통틀어 대략 19세기에 80%, 1960년대에 60%, 근래에 40% 정도의 의원이 법률가였다. 이런 나라에서 1976년 지미 카터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미국 시민들에게 설명하면서 맨 앞에 내세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나는 법률가가 아닙니다. 나는 워싱턴 정가(政街) 출신이 아닙니다.” 


법률가가 아니라는 게 왜 강점이었을까. 닉슨 때문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떠들썩할 때 법률가 출신 대통령인 닉슨은 백악관에 참모진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라고 버텨.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우리 계획을 탈 없이 지키려면 뭐가 됐든 다 감춰.” 이게 그 유명한 녹음테이프에서 나온 말이다. 법정에서 테이프를 틀자 흘러나온 이 말을 듣고 미국 시민들은 어이없었을 것이고 워싱턴의 정치인들에게 새삼스럽게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카터의 선거 전술도 그럴 법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후 모든 ‘게이트’의 원조였다. 종전엔 주로 법률가들이 의뢰인의 범죄나 비리를 변호하면서 저지르거나 의뢰인을 상대로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가 문젯거리였다. 그러나 워터게이트는 새로운 유형의 비리였다. 기득권을 가진 사회 최상층의 심각한 일탈행위를 법률가들이 주도하거나 조력했다. 미국 사회, 좁게는 미국의 법조 직역이 새로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아마 이런 사정에서였을 것이다. 2001년에 터져 나온 대형 비리인 엔론 사건에 변호사들이 끼어들어 한몫을 했던 일은 그간에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던 윤리현실을 보여준다.


성남시 대장동의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드러난 희한한 사업 설계와 수익 분배 등은 사회 상층부에 속한다는 직업군의 인물들이 모여 행한 것이다. 사업 컨소시엄에서 재산관리회사 역할을 부여받은 화천대유를 놓고 누군가는 이 회사가 “사설 로펌”이며 여기에 관계된 변호사들의 면면을 보면 “김앤장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의 운영이나 수익 분배에 끼어들었던 인물들의 직업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엔 대법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 특별검사를 역임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포함하여 이름이 오르내리는 몇몇 법률가들은 결국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숨죽이며 형사범으로 처리될 가능성에 몸을 떨고 있을까.


그들의 엉터리 짓거리를 보면 사회가 어떤 임계점을 향해 가다 터질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난 정권 ‘촛불’ 무렵이 그랬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언론은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행위 형태를 카르텔이라고 표현한다. 경쟁하면서 그 결과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누리게 해주어야 할 사업자들이 담합하여 소비자들의 이익을 자기들끼리 사사롭게 나누는 것이 카르텔이다. 말하자면 세련된 방식의 도둑질이다. 


여러 분야의 법률가들이 모여들어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관여하거나 뒷배를 봐주며 벌이는 이런 짓거리는 법조윤리의 시각에서 볼 때 전에 보기 어려운 유형의 비리다. 그렇지 않아도 법률직 공직자의 윤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는 마당에, 이번 사건은 법률가들의 윤리의식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점에서 걱정스러움을 지나 불길하다.


대장동 사건에서 누가 어디까지 형사책임을 져야 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그러나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거나 법에 걸려 곤욕을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떳떳할 것은 아니다. 법률가의 직업적 자세는 법이란 것을 이용해서 하는 모든 일에서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사명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이 말에 공자님 말씀이라며 코웃음을 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러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법률가들이 그러다간 아마 법조 직역 전체가 어느 날 ‘폭망’할 것이다. 백악관의 법률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존 딘은 사건의 교훈을 이렇게 요약했다. “거짓말하지 말 것, 협잡질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실상 이런 교훈은 법조윤리라는 과목으로 가르칠 것도 없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은 끝을 모른다.

여기까지는 법률가의 좁은 눈으로 본 사건의 양상이다. 그런데 높고 힘세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의 엉터리 짓거리를 보다 보면, 사회가 단순히 불만을 품고 분노하는 것을 지나 어떤 임계점을 향해 가다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난 정권에서의 촛불시위 무렵이 그랬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경향신문 2021.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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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01 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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