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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니스트
전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정부는 지난달 15일 잠수함에서 은밀한 기습발사가 가능해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3000t급 국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서 SLBM을 발사, 400여㎞를 떨어진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에 이어 세계 7번째 SLBM 개발 성공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발사를 참관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미사일 전력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해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북한·중국 등을 의식해 쉬쉬해 



오던 SLBM 시험발사 현장에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ADD로부터 적 함정과 지상 목표물을 마하 3의 초고속으로 타격하는 초음속 순항미사일, 세계 최고중량의 탄두를 장착한 고위력 탄도미사일(일명 현무-4) 보고를 공개적으로 받아 눈길을 모았다.
‘현무-4’ 탄도미사일은 지난해 처음으로 시험발사에 성공했는데 올 들어 개발이 끝나 이날 문 대통령 보고 대상에 포함됐다고 한다. 유사시 평양에 무게 4~5t 이상의 탄두를 날려 목표물을 초토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북한은 열차에 실은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 천장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기동성을 과시한 것이다.

SLBM 발사 기술은 북한이 우리보다 한발 앞선 것으로 인식돼 왔다. 북한은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2016년 8월 SLBM인 북극성-1형에 이어 2019년 10월 북극성-3형 발사에 성공해 SLBM 보유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군 당국은 북한의 발사 플랫폼이 불분명하다는 이유 등으로 우리나라가 7번째 보유국이라고 주장한다. 남북 간 미묘한 자존심 대결도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지난 19일 신포에서 신형 SLBM을 쏘아 올려 무력시위 강도를 한 단계 높였다. 외무성 대변인은 SLBM 발사가 미국을 의식하거나 겨냥한 것이 아니고 “순수 국가방위를 위해 이미 전부터 계획된 사업인 만큼 미국은 근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수위를 조절했다.

군 당국은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이번 SLBM은 최근 ‘국방발전전람회’에 처음 등장한 ‘미니 SLBM’으로, 기존 고래급(2000t급) 잠수함을 일부 개조해 발사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서욱 국방부장관은 “북한의 SLBM 발사는 초보적인 수준이고, 우리는 완전체로서 SLBM 전력화를 앞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사일 탄두에 핵을 장착할 수 있는 북한과 핵이 없는 우리 SLBM의 군사적 위협 강도는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자존심 대결 양상 SLBM 발사 경쟁

남과 북의 신종무기 개발경쟁은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남북이 군비경쟁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19~23일 글로벌 방산업체가 총출동한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아덱스)’를 개최한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28개국 440개 업체가 참가했다.

야외 전시장에는 공군이 전력화한 미국산 F-35A 스텔스 전투기 1호기가 실물이 도입된 지 3년 7개월 만에 일반에 첫 선을 보였다. 스텔스 성능을 갖춘 F-35A는 최대속도 마하 1.6의 무시무시한 첨단 전투기다. 명성에 걸맞게 많은 인파가 몰렸고 해맑게 기념사진을 찍는 어린이 모습이 착잡함을 자아낸다.


미군의 첨단 무인공격기 ‘그레이 이글’(MQ-1C), 미 해병대의 수직이착륙 헬기 MV-22 오스프리, 한·미 특수부대가 활용하는 침투용 수송기 MC-130K 등도 한껏 위용을 과시했다. 화면으로만 보던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과 중고도 탄도탄요격미사일 패트리엇, K-2 흑표 전차, K-9 자주포 등 지상무기도 함께 전시됐다. 실내 전시장에는 자체기술로 쏘아올린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엔진의 실물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북한이 지난 12일 노동당 창건 76돌을 맞아 열병식을 대체해 개최한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선 북한판 신종무기들이 총망라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기념연설에서 “강력한 군사력 보유노력은 평화적인 환경에서든 대결적인 상황에서든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당위적인 자위적이며 의무적 권리”라고 강조했다.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억지력과 자위력 차원에서 힘을 바탕으로 한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국방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 6위권을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2021 GFP(Global Firepower) 세계 군사력지수에 의하면 한국은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을 제치고 글로벌 6위를 차지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에 뒤이은 것이다. 북한은 28위로 평가됐다.


GFP 군사력지수는 국방비뿐 아니라 병력, 전쟁지속력, 국토면적, 인구, 경제력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핵무기를 평가요소에서 배제하는 등 평가 근거에 이론이 제기되기는 하나 2005년 이후 해마다 공개적으로 국가별 순위를 발표한다. GFP는 핵무기를 평가에서 제외하는 이유로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당사자로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국방력 6위권’ 든든하지만 평화엔 역행

우리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과 높은 국제적 평가는 굳건한 안보는 힘이 바탕이 돼야 하고 그래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편 든든한 마음이 들지만, 과연 한반도평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까 하는 근본적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쪽이 안보에 불안을 느껴 군사력을 키우면 상대방도 군사력 강화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무한대결 악순환의 ‘안보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의심과 적대감이 깊어진다. 


남북이 ‘9.19 군사합의’를 통해 지향하는 군비통제나 군비축소와 역방향이다. 그 많은 돈의 일부를 주민 식·의·주 향상이나 복지확대에 돌릴 수 있다면. 미·중간 갈등이 커지며 미국이 중국 포위전략으로 추진하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쿼드(Quad)나 미국, 영국, 호주의 군사동맹 오커스(AUKUS) 등 동아시아와 한반도평화를 위협하는 대결 양상은 날카롭다. 


이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함 10척이 일본 열도를 돌며 합동 무력시위에 나서는 등 신냉전 우려도 짙어진다. 상징적 선언에 그칠지 모른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의 첫 입구로서 ‘종전선언’의 당위성은 더욱 절실하다. 당사자인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내일신문 202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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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28 18: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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