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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 / 임기내 남북정상회담, 불가능할 것도 없다
  • 기사등록 2021-09-29 16:10:41
  • 기사수정 2021-09-29 16: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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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신문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1일(현지시간)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재차 제안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24일과 25일 이틀 새 3건의 담화를 냈다. 3건 담화의 결이 각기 다르다. 잠시지만  메시지 혼선이 일었다. 최고지도자의 뜻이 일사불란하게 반영되는 북한체제에서 보기 드문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은 리태성 외무성 부상의 24일 아침 담화였다.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는 기조였다. 해당부서의 관성에 따른 ‘모범답안’ 성격이 짙다. “일축, 냉소, 면박, 찬물” 등 부정적 반응으로 이해한 해석이 주를 이뤘다.


7시간 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가 새로 나왔다.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톤이 바뀌었다. 헷갈리는 메시지에 남쪽 전문가들과 언론의 해석도 엇갈렸다. 이튿날인 25일 밤 김여정의 추가 담화가 나왔다. 전날 자신의 담화 기조와 맥을 같이 하면서도 ‘진의’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음인지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적대시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 선결’ 조건을 단 것은 여전하지만 종전선언,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북남수뇌상봉(남북정상회담) 등 남쪽의 기대사항을 스스로 언급했다. 리 부상 담화가 주로 미국을 겨냥했고 김 부부장 담화는 대남 메시지에 집중한 차이는 있으나 남쪽 기류는 북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정리됐다.


            중국의 압력, 남쪽의 설득, 북미협상 겨냥 등 추론 다양


48시간 사이의 담화문 차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북 최고수뇌부의 정세인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합리적 추론’은 가능해 보인다.


첫째, 중국의 적극적인 조언(강력한 압력)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다.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 15일 방한했을 때 외교장관 회담과 문 대통령 면담에서 한반도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강력히 요청받았고,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모종의 교감을 나누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쟁 당사자로 종전선언에 적극적인 중국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강력히 주문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중국은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이 중요하다. 러시아도 한몫 거들었다.


둘째, 남쪽의 ‘간곡한 설득’이 전달됐고 먹혔을 가능성이다. 남북 사이의 공식적 통신연락선은 끊겼지만 국가정보원이 운영하는 핫라인은 살아 있다. 문 대통령의 구두친서가 전달되고 미국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 통보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달리 대화 모멘텀을 찾기 힘들다는 정세인식이 진솔하게 전달됐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거듭 제안한 바탕에는 한미 간 외교적 노력을 통해 미국한테서 ‘미온적인 동의’를 얻어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문 대통령이 정 원한다면 종전선언 추진을 반대하거나 재를 뿌리지는 않겠다. 어디 한번 시도는 해봐라” 정도의 양해를 얻지 않았을까. 이를 바탕 삼아 바이든 행정부가 반대하지 않으니 이 틈새를 이용해 꽉 막힌 벽을 뚫어보자고 설득했을 법하다. 미 국무부는 김여정 담화에 대해 “미국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한국과 중국의 간곡한 설득과 강력한 주문이란 ‘보이지 않는 외교’가 동시에 작동하며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냈을 가능성은 정황상 합리적인 추론의 영역에 속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국경을 폐쇄한 상태에서 더욱 심각해진 경제난도 국면전환 모색을 마냥 외면할 수 없게 했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 열쇠를 쥐고서 제재 완화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미 바이든 정부와 협상 물꼬를 트려면 문재인 정부를 통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했음직하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계기 남북 정상회담 … 종전선언까지 모색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문 대통령의 임기가 7개월 남짓 남은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기는 남북이 마찬가지다. 이 상태로 종결되면 새 정부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샅바싸움 하느라 또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민주당이 정권을 계승하든 정권이 교체돼 보수정권이 들어서든 마찬가지다.


북한이 28일 ‘저강도’로 해석 가능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남쪽 의지를 테스트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도발’로 규정하지 않고 ‘유감 표명’ 정도로 넘어가게 함으로써 ‘상호 존중하는 성의’를 보인 것으로 간주해 서로의 체면을 살리며 대화 명분을 쌓으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저간의 흐름을 감안할 때 남북 사이에 일단 대화가 재개된다면 급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종전선언까지는 몰라도 4차 남북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희망적 사고’만은 아닐 듯싶다. (내일신문 2021.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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