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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 25> 냉소주의는 건전한 사회의 적이다
  • 기사등록 2021-09-27 16:14:29
  • 기사수정 2021-09-27 16: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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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디오게네스는 지금부터 약 2천4백년쯤 전에 살았던 괴짜 철학자다.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평범한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데 있고, 또한 자연스러운 것은 부끄럽거나 보기 흉한 게 아니라는 사상을 역설하고 실천하면서 살았다. 가난하면서도 당당한 삶을 살다 간 철인이다.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찾아와 그에게 소원을 말하면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그는 대왕에게 자기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말했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디오게네스의 다른 일화도 알려져 있다. 그가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입구에서 인간과 세상에 관한 깊은 지혜를 설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상스런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앞의 경우와 전혀 달라졌다. 


모두들 모여서서 그 욕설에 귀를 세웠으며, 욕설의 대상이 누구이고 내용은 무엇인지 열심히 알아보려고 했다. 디오게네스가 한탄했다. “도대체 사람이란 모를 존재야! 보석 같은 지혜에는 다 귀를 막더니 쓸데없는 욕설에는 도리어 귀를 기울이다니...”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미담이나 훌륭한 견해보다는 험담 비슷한 어두운 얘기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정보의 전달과 교류가 빛의 속도에 비유될 정도로 빠른 요즘도 지혜나 고급 정보, 지식보다는 스캔들이나 인신공격이 더 빠르게 널리 전달된다. 인간의 성향이 본래 그런 걸 어떡하느냐고 단정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참으로 씁쓸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건전한 사회, 말 그대로 열린사회, 선진 사회의 의사소통 모습을 상상해본다.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가 속한 사회나 국가의 크고 작은 여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해보고, 또한 진지한 자세로 의견을 내놓으며, 아울러 이에 대해 구성원 대다수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그런 사회가 아닐까. 


한 마디로 진지성이야말로 어떠한 사회가 과연 건전한 사회, 열린사회인지를 가리는 핵심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전히 사회 전체의 효용성 면에서 생각해봐도 그런 사회는 실제로 구성원 모두의 지혜를 결집하고 극대화하여 꾸려가는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사회가 설령 경제적으로 어렵고 또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더라도, 만일 구성원 대다수가 이런 진지성을 두텁게 지니고 있다면 그 사회는 건전하고 장래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면 한 사회에 진지성이 희박하고 냉소주의적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면 끔찍한 상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진지함이 실종되면 그에 따라 냉소주의가 등장하고, 시간이 갈수록 냉소주의는 전염병처럼 넓게 번진다. 냉소주의는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안이나 다른 관점을 내놓았을 때 그에 대해 콧방귀 뀌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문제 제기의 진정한 의도를 살펴보지도 않는다. 대안적 의견에 대해서도 귀를 막는다. 다른 관점이나 패러다임에서 접근하는 건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툭하면 성급한 진영논리, 무지막지한 편 가르기, 어설픈 아마추어리즘만 동원한다. 이런 냉소주의가 발전이나 변화로 가는 문을 굳게 닫아버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의 고도 정보사회는 수없이 많은 거미줄이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복잡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작은 문제도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그 원인 규명이나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더욱 건전하고 인간적인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진지한 자세를 지니고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참신한 발상을 내놓아야 한다. 사실은 이렇게 해도 될까 말까다. 그런데 처음부터 냉소적 태도로 나온다면 어떻겠는가? 이런 냉소주의의 폐해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아마 계량화해서 따져본다면 그 비용과 그로 인한 손실은 막대할 것이다. 

 

진지함이라는 건 어떤 발언에 대해서든 일단 그것을 개선과 긍정적 변화를 향한 선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간주하고 경청하는 태도다. 모든 발언이나 아이디어가 하나같이 건설적인 대안이거나 혁신적인 패러다임일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정말로 진지한 태도, 경청하는 자세로 살펴봐도 건질 만한 게 별로 없을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무릎을 탁 칠만한 해법, 참신한 발상이 그처럼 쉽게 나올 수는 없을 테니까. 굳이 수치화하면 정책이나 대안으로 채택할 만한 아이디어는 제시된 것들 중 1퍼센트에도 못 미칠지 모른다. 

 

유의해야 할 점은 진지함을 지니지 않음으로 인해 그 1퍼센트의 생각을 놓쳐 버릴 수 있는 개연성에 있다. 진지하지 않음, 냉소주의의 폐해는 진지성의 대가의 수십 배, 어쩌면 수백 배에 달할지 모른다. 이 점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사회적 영향력 큰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 그룹과 전문가 집단이 특히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서 굳이 현재 우리나라 여러 정치인의 독설이나 궤변과 별반 다르지 않는 이런저런 발언들은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다. 마땅히, 이들은 설령 우리 사회에 냉소주의 비슷한 게 생겨나더라도 그게 퍼지는 걸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냉소주의를 키우는 온상 역할이나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능한 한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자. 여러 사람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에 관해, 제시하는 해법과 대안에 관해 항상 진지한 태도를 갖도록 해보자. 분명히 이런 태도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 각자에게 시야의 확장과 포용적 대응이라는 귀한 선물을 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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