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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전 헌법재판관


로스쿨제도·법조일원화 시행 제도 변했는데 문화 안 바뀌면
전관·후관예우 걱정할 상황 시민이 직접 사법에 참여해
주권 행사하면 막을 수 있어





역사에 그 절차가 자세히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재판은 기원전 399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소크라테스 재판이 아닐까 싶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추첨으로 뽑힌 500명의 성인 남성이 재판을 담당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독한' 혐의로 고발당하였다. 고발인들이 소크라테스가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변론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판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수결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였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사형. 고대 로마에서는 집정관이 재판을 담당하였는데,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원로원이 판결하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형사사건에는 450명의 로마시민이 재판에 참여하였다.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은 서구 재판제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영국에서는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1066년에 이미 12명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영국의 배심재판은 미국에 건너가 꽃을 피웠다. 

미국에서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된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대륙에서도 배심제도가 있었지만, 배심재판 보다는 소수의 시민이 법률 전문가인 판사와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여 재판하는 참심재판이 발전하였다.

서구 재판제도를 받아들인 일본도 1923년에 배심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식민지인 한반도에서는 배심제를 시행하지 않았고, 일본 내에서도 1943년에 배심제를 폐지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는 일본이 이식한 사법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재판은 법률 전문가인 판사가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민주국가로 국제사회에 알려졌지만, 시민이 사법에 참여하는 제도가 없는 특이한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법원이었다. 대법원은 1994년부터 배심제와 참심제에 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4년 대법원에 설치된 사법개혁위원회는 국민의 사법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의 도입을 건의하였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2007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국민참여 재판은 널리 환영 받았지만, 제도 자체에 치명적 한계가 있었다. 피고인이 원하지 않으면 국민참여 재판을 할 수 없고 재판부가 배제결정을 할 수도 있어, 극히 일부 사건에 대해서만 국민참여 재판이 이루어졌다. 

또 배심원의 유무죄와 양형에 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만 있어 재판부는 배심원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국민참여 재판을 진행하려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재판하여 바로 결론을 내려야 하므로 재판부의 부담이 크다. 

재판에 참여하는 시민들로서도 긴 시간 법정에서 재판에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제도 도입 이후 꾸준하게 증가하던 국민참여 재판이 2016년 이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민참여 재판은 법전에만 존재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사법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나온다. 입법권과 행정권은 선거를 통하여 통제하지만, 사법권은 재판 참여를 통해 통제하여야 한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와 법조일원화가 도입되어 이제 10년 이상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법조인으로 활동한 사람만 판사가 될 수 있게 된다. 

좋든 싫든 우리 사법제도는 유럽 대륙식에서 영미식으로 전환되었다. 제도는 바뀌었는데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전관예우와 후관예우를 모두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방지하고 해결하려면 시민이 직접 사법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매일경제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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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24 17: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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