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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니스트



지난 5월 성추행 피해를 입은 공군 여성 부사관이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했지만, 해군과 육군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또 일어날 것이다. 최근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됐을 뿐이지 군 내부의 성폭력 문제는 예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잠복해 있었다.

군 조직이 지나치게 폐쇄적인 데다 전 근대적 상명하복 계급문화가 체질화된 탓이 크다. 특히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규정에 따라 해결되기는커녕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회유·협박에 시달리고 주위에 악성 소문이 나도는 등 2차 가해에 노출돼 2중으로 고통을 겪고 절망감에 빠져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폐쇄적 조직에 전 근대적 상명하복 계급문화 체질화


성폭력 뿐 아니라 하급자를 상대로 가혹행위를 하거나 집단 괴롭힘으로 인권을 유린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도 많았다. 군은 그때마다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각종 대책을 내놓았으나 그 때 뿐이었다. 비난 여론이 잦아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 설치, 병영문화 선진화방안,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 가동, 보호·관심병사 관리와 고충처리시스템 개선, 전군 인권교육 강화 등 국방부가 내놓은 대책이 어디 한 둘이었나.


어찌해야 할 것인가. 땜질식 처방의 반복으로는 근절되지 않는다. 군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군 지휘부가 울타리 안에서 배타적으로 누리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철저히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야 한다. 군대는 직업군인들의 ‘안정된 직장’이 돼선 안 된다. 온 국민의 자식이 신성한 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인 곳이 군대다. 단순한 부하 졸병들이 아니다. 직업군인은 이들을 맡아 강인하고 투철한 군인이 되도록 지도하고 훈련하는 역할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았을 뿐이다.


군을 잘 아는 인사들은 성폭력, 인권유린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고 비판한다. 사건이 벌어지면 고립된 채 혼자 고통을 견딘다. 간신히 용기를 내 신고하지만 규정된 대로 해결되기보다는 가해자와 주위로부터 회유·협박을 당하거나 군 수사기관의 형식적인 수사와 조직적 은폐 기류를 감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더욱 황폐해지고 절망감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 군 지휘부가 나서 사과하고 대책을 발표하는 등 요란하게 반성하다가 시간이 흘러 잊혀질만하면 군사법원에서 ‘조용하고 원만하게’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한다. 위아래 관련자들의 진급 등이 걸린 터라 적당히 봐주며 가급적 시끄럽지 않게 처리하려 한다.


국회는 지난달 3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군 내부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와 군 사망사건, 입영 전 발생한 범죄 등을 군사법원의 재판권에서 제외해, 1심부터 민간법원에서 재판하도록 했다. 그 밖의 군내 범죄는 기존대로 군사법원이 1심을 맡되 항소심부터는 민간법원이 담당하도록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했다. 또 군부대 지휘관이 군사재판에 간여하는 통로였던 관할관·심판관 제도를 전시에만 운영하도록 하는 등 관련 체계도 정비했다.


  군사법원법 개정 일부 진전이지만 군사법원 폐지했어야


철옹성 같던 군의 사법 기득권을 일부나마 제한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근본개혁에는 못 미친다. 정의당 소속 의원들이 전원 반대한 데서 드러나듯이 군 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이참에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민간위원들이 ‘누더기 개혁’이라며 전원 사퇴하며 밀어붙였으나 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법제화에 이르지 못했다.


군 범죄 중 군 기밀누설, 군무이탈 등 군사범죄는 8%에 불과하고 나머지 92%는 군인의 일반 형사범죄라는 통계에 따른다면, 굳이 평시 군사법원을 존치해야 할 이유가 약하다. 남북대치 특수사정을 들먹이지만 비슷한 대만의 경우 2013년 군사법원을 폐지했다.


우리 군은 세계 6위권의 군사강국임을 자랑스레 내세운다. 엄청난 국방비 투자, 최첨단무기 구입·배치, 방위산업 고도화 등 전투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군 체질 개선과 병영문화 정립은 한참 못 미친다. 자주국방 의지도 약하다.


군 전투력은 일반장병의 사기와 비례한다. 인력 부족으로 여성의 군 진출을 적극 장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권이 보호되고 성범죄 위험성이 낮아질 때 사기가 올라가고 군의 정예화, 강군 육성은 탄력을 받게 된다.(내일신문 2021. 09.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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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10 17: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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