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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성균관대 교수  




                                                                 

드라마 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병역의 의미와 안보 참여 개념의 근본적 재검토를 요청한다. 드라마를 보며 잠재됐던 트라우마를 느낀다는 사람들은 20~30대들 뿐 아니다. 제대한 지가 한참 지난 40~50대 중에도 꽤 있다. 알다시피 김보통의 웹툰 원작에는 ‘개의 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 개(‘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상용어. 애견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취급당하고, 선하던 사람이 악마처럼 되어 동료 병사를 죽도록 괴롭히는 대한민국 군대는 변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육군 향토사단 사령부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때 부대 사무실에서 자주 읽던 책(?) 가운데 군 수뇌부에서 간행한 ‘사고 사례집’이 있었다. 거의 한글 대사전 두께의 이 ‘대외비’ 자료집에는, 온갖 ‘사고’ 즉 자살, 내무반·초소 등에서의 총기 사건 외에 교통사고, 작업 중 안전사고 등 수많은 사망 사건이 정리·기술돼 있었다. 군에서 계속 가혹행위를 당해오던 병사가 결국 견디지 못해 탈영하거나 내무반이나 초소에서 가해자들에게 소총을 갈기고 자기도 목숨을 끊는다는 의 스토리는 사실 얼마나 전형적인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군 안에서 다치고 죽고, 또 서로 죽이고 죽였던가?


국방부와 군 장성 출신들은 영화의 서사가 과거의 가장 열악한 부대에서의 과장된 것이라 변명하고 싶어하겠지만, 제대 후에도 광범위한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그런 한가한 소리에 대한 살아 있는 반박이다. 제6화의 마지막 장면들이 보여주듯 가해와 방관은 병사 누군가들이 소시오 패스여서가 아니라 ‘구조’와 ‘습속’에 의해 허락받고 강요된 것이다. 


지휘관과 간부들이, 또는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어떤 힘이 방조하거나 구조화한 것이다. 드라마의 결말은 한국군 체제의 깊고 오랜 병통을 지적하고 모두 가해자, 피해자, 방조자가 되어 용서도, 구원도 불가능한 데가 아니냐고 묻는다. 이 주제는 2005년 개봉되어 큰 충격을 주고 약간의 논란도 부른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와도 동일하다.


김대중 노무현식 ‘민주화’ 이후에도, 또 자랑스러운 특전사 출신이 대통령인 2020년대에도 대한민국 군대는 왜 여전히 용서도, 구원도 불가능한 구조의 공간인가? 잇달아 죽음을 선택한 변희수 하사와 여부사관들 그리고 그저께 공개된 해군 정모 일병의 죽음이 말해주는 것은 뭘까? ‘e나라지표’에 공개된 군내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군내 자살자 수는 2010년대에 줄다가 다시 2018년부터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왜?


드라마가 수작인 것은, 병영과 한국사회가 계급구조와 폭력을 상호교환하며 ‘싱크로’된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 군대문화 가운데 제일 나쁜 것 중 하나가 스물 언저리의 청년들에게 이병 일병 상병 병장 등의 계급장을 나눠주고 그것도 모자라 며칠 차이 나지 않는 입대 순서로 폭력적이고 어이없는 ‘고참 놀이’ ‘서열 놀이’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그런 문화와 군 바깥의 계급 불평등, 특권과 수직서열, 상명하복의 문화는 습득되고 전이된다. 병영을 견디다 못해 도피한  DP의 ‘군탈자(Deserter)’들은 아마 실제로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모두 ‘을’ 이하 가난하고 억압당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4화의 허 병장처럼 아무리 노력하고 계획해도 ‘출구 없는 삶’을 산다. 


심지어 가해자 황 병장도 제대 후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또 다른 ‘을’에게 부당하게 당하고 있다. 반면 정치인의 아들이나 ‘빽’ 가진 장교는 부조리와 비리에도 빠져나가고 군 안에서도 보호받고 특권을 누린다.


군은 사회와 격절되어 있기도 하고 연결되어 있기도 한 양면적 공간이다. 그런데 선택적으로, 불건강한 ‘사제’의 상황과 논리가 통하는 데가 될 때 군은 최악이 된다. 한편 군을 가혹행위와 (성)폭력이 용인되는 남성우월주의의 ‘특수한’ 장소가 되지 않게 해야 하고, 다른 한편 병영 바깥의 불평등과 계급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이 되게 해야 한다.                            

더 많은, 더 다양한 정체성의 시민과 여성들이 ‘안보’에 관여하여 군을 더 깊이 ‘사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철도 와서 이 사회는 군과 병역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군 개혁과 ‘사회화’의 유력한 방법이 여성이 의무복무제에 참여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는 군만이 아니라 병역과 안보 책임의 구조를 바꾸고 젠더구조와 시민권의 상상에도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몇몇 대선 후보들이 의무복무제와 모병제를 배합한 공약을 말한 바 있다. 더 정밀하고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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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09 17: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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