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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前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 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에 대한 인도주의적 구상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가운 소식이다. 북한의 경제난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미 고위급 인사의 이 같은 약속은 시의적절하다.

한·미 합의에도 코로나 방역 변수/ 북한의 지원 당연시 태도도 문제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프로젝트엔 까다로운 난관들이 있다. 코로나19 예방 조치 때문에 물리적으로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어려운데, 특히 북한 내 검역 시설이 충분치 않아서다. 식량처럼 상하기 쉬운 물자가 취약하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국제 구호 요원들은 북한이 효율적 원조를 하기 유독 힘든 나라라고 토로하곤 했다. 다섯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 북한 정권의 간부 상당수는 단순히 고통을 덜어 주려는 목적으로 구호물자를 준다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2005년 보안 당국이 국제 구호요원들을 해외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아 침투한 존재로 간주했고, 실제로 상당수의 비정부기구(NGO)를 쫓아내기도 했다.

둘째, 보안 당국과 달리 많은 북한 관료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원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구호물자는 관용이 아닌 그들이 마땅히 누리는 권리라고 믿는다. 때로는 특정한 조건으로만 이를 허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도 처신한다. 구호요원들은 북한의 관료주의적 절차에 지치고 한편으론 지원을 더 많이 해 주지 않는다는 불평에 시달린다고 털어놓곤 했다. 


식량 원조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북한 현지의 영어 교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북한 당국은 사의는커녕 프로그램이 미흡하니 더 해 달라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구호기관과 후원자들은 이런 적반하장 태도를 못마땅해 한다.

셋째, 북한은 구호물자 배급을 서방이나 남한의 구호 요원들이 통제하려 하면 몹시 분개한다. 북한 당국이 도움이 절실한 주민들에게 배급한다면 믿고 맡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기근 때부터 북한이 구호물자의 상당 부분을 주민들이 아닌 군대, 곡물 매매업자, 고위 간부들에게 빼돌리는 게 분명해졌다. 


도덕적으로도 불쾌한 일일 뿐 아니라 구호기관으로선 대체로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하는(또 원조에 감사할 줄 아는) 나라들도 많은데 굳이 북한을 계속 지원해야 할 이유를 후원자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NGO들이 북한을 떠나기 전부터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었다. 

구호물자 유용(流用) 문제 때문에 접근법이 바뀌기도 했다. 일례로 세계식량계획(WFP)은 쌀 공급을 선호했지만, 고열량 비스킷을 제공해야 했다. 비스킷은 요리 필요가 없어 배급 대상자들이 먹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넷째, 북한은 관료들 간의 복잡한 대립 관계로 분열되어 있어 부서마다 구호물자를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NGO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하면 들어 본 적도 없는 부서에서 나타나 자기들도 도움이 필요하다며 물품의 상당량을 요구한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는 지체되고 비용은 증가한다.

다섯째 북한에는 조직화한 시민사회가 별로 없다. 아프리카에서도 현지문화에 정통하고 최적의 배급망을 알고 있는 지역 단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데 북한에선 이런 협력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있다 해도 북한 적십자사 정도인데 재난구조에 도움 되는 정도다.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제 한·미 정부도 인도주의적 북한 지원이라는 과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직접 알게 될 것이다. 모쪼록 양국 정부가 이 문제로 오랫동안 씨름해 온 자국 NGO들과 논의한 뒤 효율적인 대북지원을 무사히 진행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 내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국제 사회가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는 건 옳은 일이다.(중앙일보 2021.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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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8-13 17: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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