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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 / 이 민감한 때 한미연합훈련 꼭 해야 하나?
  • 기사등록 2021-08-09 17:20:17
  • 기사수정 2021-08-09 17: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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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니스트





하반기 한미연합 군사훈련 실시 여부를 놓고 정부의 고심이 깊다. 해마다 전·후반기 두 차례 연합훈련을 앞두고 찬반 논란이 일었지만 이번에는 범여권 의원 74명이 공개적으로 조건부 연기론을 펴는 등 반대론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끝에 끊겼던 남북 통신연락선이 1년여 만에 복원돼 모처럼 대화 재개 분위기가 조성되며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형국이다. 국내 코로나19 확산세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1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연합훈련이 진행되면) 신뢰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북남 수뇌들의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고 북남관계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6일 화상으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현재의 형세 하에서 건설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처럼 맞은 대화재개 분위기 훈련강행으로 망칠 수도

정부 내 일각에선 어렵게 온 이 기회를 살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찾아야 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국가정보원은 3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할 경우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나설 수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박지원 원장은 “한미훈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진즉부터 “어떤 경우에도 (한미훈련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부로선 북한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공세도 부담스럽지만, 현재 상태로선 훈련 파트너인 미국을 설득할 명분이 약하다는 점이 신경 쓰이는 것 같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훈련이 다 준비된 상황에서 남북통신선 연결 정도로 미룰 것이 아니라고 ‘불가피론’을 펴는 것도 일정에 변화를 줘야 할 만큼 협상이 진척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군 측은 훈련 실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달 취임한 폴 라카메라 한미연합사령관으로선 이번이 첫 한미훈련이라 양국의 작전 이해를 향상시킬 적기로 보고 있다고 한다. 군 당국은 “훈련 시기와 규모, 방식 등이 확정되지 않았고 양국이 협의 중”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최종 결심에 달려 있다. 문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서욱 국방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한미 간에)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다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심각해진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할 때 축소나 연기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에도 코로나19로 한 차례 연합훈련을 연기한 만큼,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위험도가 한층 높아졌고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계속 연장되는 등 상황이 더 심각해진 올해엔 더욱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최종 결정을 미루는 사이 훈련 준비는 계획대로 추진돼 훈련에 참가할 미 증원군 일부가 입국하는 등 세부 일정이 진행 중이다. 한미 군 당국은 10∼13일 사전 연습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을 하고, 16∼26일 연합지휘소 훈련을 실시한다는 계획 아래 규모를 축소해 진행하는데 무게를 두고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 규모 대폭 축소해 북한 도발 가능성 낮추려는 듯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할 때 한미 정부가 상반기 연합훈련 때보다 규모를 더 축소하되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사실상 축소 진행 방향으로 추진하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북한의 반발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것.


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해 실시하면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막판까지 훈련 연기를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 나름 성의를 표시하며 ‘상황을 관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만 막판 결단에 따라 방향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정부는 실기동훈련이 아닌 ‘방어적 성격의 지휘소 훈련’이라고 강조하지만, 그동안 훈련 내용에는 ‘방어’ 외에 ‘반격’과 일부 선제공격이 포함되어 있으며,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안정화 작전 훈련도 하는 등 북한 입장에선 ‘공격용’이라고 주장할만한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는 늘 훈련을 해야 하고, 북한의 침략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는 이상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맞지만, 한반도 평화를 살릴 좋은 기회를 해치면서까지 연합훈련을 관성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이냐 하는 근본적 성찰을 해야 한다.


전작권 조기 환수를 위해 환수조건 충족 차원에서 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미국의 ‘변심’과 소극적 태도로 사실상 빛이 바랜 상태다. 정부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주체적 자세로 결단하는 모습이 아쉽다. (내일신문 2021.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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