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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식의 인문학적 시선 23>-성적 충동에 쉽게 휘둘리는 인간
  • 기사등록 2021-08-09 16:55:56
  • 기사수정 2021-08-09 22: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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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지은 고대 그리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트로이 원정에 성공한 영웅 오디세우스가 겪은 여러 표류담과 그가 고향 이타카섬에 돌아오기까지 20년 동안 벌어진 일로 엮어져 있다. 오디세우스가 겪는 모험 가운데 하나가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세이렌은 섬에 사는 일종의 인어(人魚)다.


세이렌들이 하는 일은 섬 근처를 지나가는 어부들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하여 어부들의 혼을 빼놓음으로써 배가 급류에 휩쓸려 난파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워낙 달콤하다 보니 근처를 지나가는 배들은 다 박살이 났고 선원들은 모두 물귀신이 되고 마는 불상사가 계속되었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들의 집요하고 강한 유혹을 뿌리치고 사실상 돌파가 불가능한  해역을 무사히 빠져나간 비법이 자못 흥미롭다. 그는 배가 세이렌들이 사는 섬 가까이에 가기 전에 밀랍으로 부하 선원들의 귀를 단단히 틀어막게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의 손과 발을 돛대에 밧줄로 단단히 묶어 놓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세이렌의 섬 근처를 통과할 때 과연 세이렌들은 한없이 달콤하고 유혹적인 노래를 부른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고 있어서 노랫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당연히 아무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세이렌의 달콤한 노랫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던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묶인 자신을 풀어달라고 부하들에게 소리쳐댄다. 하지만 부하들에게는 오디세우스의 외침이 전연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풀어주지 않는다. 결국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세이렌의 바다를 무사히 통과한다.


공자는 마흔 살 때의 그 자신의 경지를 ‘불혹(不惑)’이라고 규정했다. ‘혹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혹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온갖 유혹에 흔들린다는 말이다. ‘혹하게 만드는 것’은 건전한 사고나 이성적 인식 또는 온전한 가치 판단을 통째로 헝클어지게 만들고 만다. 엄청난 부, 높은 직책, 누구나 부러워 할 영예 등이 그런 것들이다. 당연히 ‘성(sex)적 유혹이나 충동’도 이런 ‘혹하게 만드는 것’의 목록에 포함된다. 아니, ‘성적 유혹이나 충동’은 이런 목록에서도 단연 수위를 차지할 만큼 강력한 요소다.


백 퍼센트 난파당하고 죽을 위기를 현명한 아이디어로 돌파했던 오디세우스조차 정작 세이렌의 노랫소리에는 이성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까마득한 옛날 얘기지만 《성서》에 등장하는 다윗 왕도 이 ‘성적인 충동’ 앞에서는 한 마리 야수와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최강대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도 바로 이 유혹(충동)으로 인해 대통령 자리마저 간당간당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고위직 인사들이 바로 이런 성범죄(!)로 인해 망신스런 신세로 전락했는가 하면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다.  


인간이 성적 유혹이나 충동을 이겨내기 어려운 까닭은 인간도 근본적으로 동물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뇌신경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포유동물의 뇌(인간 뇌의 변연계 부분에 해당)에 대뇌피질부가 더해진 구조로 되어 있다. 포유류의 뇌는 순전히 본능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작동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흔히 ‘감정의 뇌’라고 말하기도 한다. 포유류와 달리 인간의 뇌에는 본능과 감정을 억제하고 냉철하게 사고하는 대뇌피질부가 있다. 문제는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 부분의 힘이 항상 막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 뇌의 대뇌피질부가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툭하면 생긴다는 점이다. 


이성적 존재로 자부하는 우리 인간에게 뇌신경과학이 말해주는 사실은 한마디로 인간은 다양한 유혹이나 충동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자제력이나 냉철함, 또는 의지의 강인함을 자랑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나는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제 행태를 보면 이런 큰소리는 그야말로 허풍에 가깝다.


오디세우스는 “나는 세이렌의 유혹에 절대로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라고 큰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세이렌의 유혹에 얼마든지 홀릴 수 있다. 때때로 내 마음은 나조차 모르지 않는가. 일시적 충동이나 유혹에 내 영혼을 뺏기지 않으려면 아예 밧줄로 내 손발을 칭칭 동여매는 수밖에 없다!”라고 자신의 취약성을 겸허하게 인정했다. 오디세우스가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 참으로 존경스러운 면모는 자기의 취약한 면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다는 데 있다. 


대체로 인간은 성적 욕구나 충동, 또는 성적 유혹을 결연하게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의지가 굳건하지 못하다. 이 명제를 분명한 사실로 인정하고 그런 욕구나 충동이 제멋대로 날뛰거나 그런 유혹에 빠질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차단하려고 힘쓰는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지 않는 한,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외모를 한 짐승으로서 살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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