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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성균관대 특임교수       

 前인사혁신처장 성균관대 특임교수




2000년대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몇 가지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지역과 정파성에 강하게 의존하고, 행정 경험이 부족하며, 평범한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가 대통령 실패의 전부라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이 세 가지라도 넘어서야 내년 대선에서 지금보다 훨씬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이 탄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해 조정하는 통합이 최고 덕목
행정경험 두루 갖추면 금상첨화
보통 국민의 평균적 삶 이해해야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파성은 국민을 반으로 갈라 놓는다. 내 편을 집결시켜 선거에서 당선될수 있는 확률은 높여 주지만, 당선이후 국민 통합에는 큰 걸림돌이 된다. 국가 지도자의 시선이 자신을 지지하는 지역과 정당에만 머물면 거기에서 파생된 정책과 제도는 반대 지역, 반대 정당의 원망과 불만을 낳을 수밖에 없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때까지 때로는 내 편으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36년)과 정부 인사혁신처 등 38년 여를 인사 분야 전문가로 활동한 필자가 보기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할 줄 아는 능력이 국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통합적 리더십은 거짓말하지 않는 솔직함에서 나온다.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편에는 가혹하고 네 편에게는 관대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솔직함은 외교에서도 중요하다. 국내 정치적으로 거짓말하는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행정 경험은 행정부 수반이라는 대통령직의 특성상 무엇보다 중요한 자질이다. 행정의 일선에서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치열하게 충돌하는지 경험해보고, 자신이 통과시킨 법이 시민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려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경륜을 쌓아야 한다. 시·구의원, 시·군·구청장을 거쳐 국회의원, 시·도지사 경력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 중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다원화·수평화·복잡화된 대내외 환경에서 대통령은 ‘민족의 영도자’보다는 고도로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유능한 행정가가 돼야 한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성공의 시대가 왔다. 기술의 선진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를 뒷받침할 참모를 정확히 쓸 줄 모르면 국가를 경영하기 어렵다.

보통 국민의 평균적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 역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오늘 벌지 않으면 내일 굶어야 하는 삶, 한창 배우고 실력을 갈고닦아야 할 시기에 군에 입대해야 하는 삶, 세금 내고 직원들 월급 챙겨주고, 월세 내고 나면 정작 내 손에는 푼돈밖에 남지 않는 삶. 이런 삶들을 가까이서 보고 겪은 사람일수록 국민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공감할 줄 모르는 정치인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오늘날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뜯어보면 대통령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시민사회를 설득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언론은 24시간 사방에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고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런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국정 운영이 조급해지기 마련이고,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부각하려는 욕심이 생기게 된다. 민주 사회의 대통령은 왕조 시대의 임금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제한된 시간 동안 제한된 권한만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전임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 사이에서 연속성을 고려한 국정운영을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작은 성공, 작은 변화를 지향하면서 국가의 기초적인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대통령이 자꾸 나와야 국가가 좌우로 비틀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진영이 아닌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 걸어온 삶의 여정이 깨끗한 대통령, 돈 벌어보고 세금 내본 대통령, 국방 의무를 다하고 가족과 가정에 충실했던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 지금의 유권자만이 아닌 미래의 유권자도 동등한 권리자라는 인식을 갖춰 미래를 같이 꿈꿀 수 있는 그런 대통령 말이다.


국민 삶의 애환을 이해하고 유능한 행정가, 품위 있는 입법가의 경륜을 고루 갖춘 사람이라야 조급해하지 않고 작은 성공에 만족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의 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바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2021.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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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23 17: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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