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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대검 차장, 변호사


          감옥의 DJ는 이렇게 썼다.   "죄인이 누구를 원망하랴"
               다섯번 죽을 고비 넘기고도 정치보복 하지 않았다.  

                    그 관용의 큰 정치 그립다

             


정치의 계절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도전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큰 물결에 올라타야 하는 시점에서 국가 리더의 철학과 리더십이 미치는 영향은 막중합니다. 2000년 봄 청와대 파견 근무 시절 '김대중 옥중서신' 책자를 선물받았습니다. 

재야 정치인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29통을 묶은 책입니다. 2년7개월간 한 달에 한 번만 허용된 편지는 봉함엽서 앞뒷면에 깨알 글씨로 쓰였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한 정치인의 국가관, 역사의식과 경영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어 책장을 넘겨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자신을 사형으로 몰아 간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장면입니다. 나 자신도 죄인인데 누구를 심판하고 누구를 단죄할 수 있겠냐고 고백합니다. 용서와 사랑은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고 평화와 화해로 가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사색당파가 불러온 증오와 불신, 음모와 보복, 중상모략의 참극(慘劇)과 폐해에 대해 통탄합니다. 영국인이 역사에서 배운 교훈도 제시합니다. 1649년 청교도전쟁 시 국왕 찰스1세를 처형했는데 후유증과 국가 분열이 너무 크다는 것을 반성하고, 1688년 명예혁명 때는 제임스2세로 하여금 해외로 몰래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내란음모 재판 최후진술 때도 '나는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겠지만,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날이 왔을 때 절대 정치적인 보복이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진술합니다. 실제 6년의 감옥생활과 다섯 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 정치보복이 없었습니다. 국가 역량을 과거를 파헤치는 데 과용(過用)하지 않고 IMF 경제위기 극복에 집중했습니다.

옥중서신에서 놀라운 부분은 미래에 대한 통찰과 비전입니다. 40년 전에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예견합니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힘겨운 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없어지고 기계가 맡게 될 것을 예측합니다. 교통과 통신이 모든 곳을 연결하여 지구촌 시대가 되며, 우주 개척 시대가 올 것도 언급합니다.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평등한 교육과 경제생활 속에서 개성과 자질을 발휘할 것이라는 희망도 피력합니다. 감옥에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큰 충격과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깨달음은 대통령 취임 후 '지식정보화 강국'의 토대가 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책을 밀어붙였고 끊임없이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반대 목소리를 경청하는 리더십도 본받고 싶은 부분입니다. '관용과 협력의 기풍을 만들려면 상대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도자는 도량과 자제와 끈기로 대립하는 의견과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해서 1대1로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쓴소리는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비서실 구성원들도 이를 알기에 의견이 갈리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반대 목소리도 수렴해서 가감 없이 따옴표로 처리하여 기재해 놓았습니다.

정치보복을 배격하는 관용과 포용, 미래에 대한 통찰력, 반대 의견 경청과 이해. 김대중 리더십의 세 덕목은 오랜 감옥생활과 가택연금, 시련과 고난 속에서 단련됐습니다. 일본, 미국, 영국에서 보낸 3년 넘는 망명과 외유 시절도 자양분이 됐습니다. 다가오는 5년은 대변혁의 급물살 속에서 대한민국의 50년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소중한 국가 에너지를 단단한 미래 건설에 오로지 집중하는 큰 정치의 리더십이 발휘되길 기원해 봅니다. 
  • (매일경제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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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23 16: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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