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심창식 / 장자와 들뢰즈에 비춰본 문명의 혼돈과 코로나 그리고 한류
  • 기사등록 2021-07-23 12:35:27
  • 기사수정 2021-07-26 11:07:09
기사수정

한겨레 온 객원편집위원

 



코로나 예방 접종률이 높아 각종 규제를 풀던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이 델타 변이로 무장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람다 변이 바이러스가 기세를 부리고 있다. 처음 등장할 때와는 또 다른 위협이다. 예방접종률을 높이면 코로나 사태가 해결될 거라는 예상과 희망이 일거에 무너지고 있다. 과연 코로나가 겨냥하는 칼끝은 최종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인류문명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새 문명이 예고되는 시점에 맞춰 코로나가 등장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다고 코로나로 인해 현재의 문명이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문명이 나아가는 방향과 진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것이 어떤 형태와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전지구적인 문명의 혼돈이 아닐 수 없다. 현 문명에서 코로나와 변이 증상을 예방하고 소멸시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혼돈의 와중에서 기후위기까지 더하여  현 문명은 서서히 종말의 길에 접어들 수도 있다. 


송나라의 사상가인 장자(莊子)는 혼돈 속에서의 자유와 혼돈의 죽음에 대해 이런 비유를 들었다.  남해의 왕은 숙(갑자기 숙倏)이고, 북해의 왕은 홀(소홀할 홀 忽)이며, 중앙의 왕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은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그때마다  혼돈이 그들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이에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지 논의하며 말했다. 


'사람은 모두 7규(七竅, 일곱 개의 구멍 : 눈,귀, 입,코)가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혼돈에만 없으니 구멍을 뚫어주자.' 그들은 날마다 혼돈의 구멍을 하나씩 뚫었고 7일째 되는 날 혼돈은 죽고 말았다.(장자의 '응제왕'편)

이 비유에서 남해는 밝은 세상, 북해는 어두운 세상을 말하는데 서로 상반되는 상대를 일컫는 것이고, 숙은 재빠르게 나타나는 것이며 홀은 재빠르게 사라지는 출몰의 상대를 나타낸다. 그리고 중앙은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뜻하고, 혼돈은 아직 미분화된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남해왕 숙과 북해왕 홀은 생존을 위해  다급하게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는 인류가 기후관리와 자연보전에 소홀하고  본연의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상태에서 물질적인 풍요와 감각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모습이다.  인류는 내심으로는 밝은 세상을 추구하지만  어느덧 어두운 세상으로 빠지곤 한다. 인류는 혼돈 속에서 즐기다가 불현듯 인간성을 회복하려 7번에 걸친 시도를 하고  혼돈은 그로 인해 사라지고 만다. 혼돈이 죽은 후에 숙과 홀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새로운 자유일까, 아니면 새로운 구속일까.  장자의 비유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현 문명에 던지는 화두이다. 

 


혼돈과 격리 / Pixabay 무료사진                         혼돈과 격리 / Pixabay 무료사진


코로나가 나타나기 전의 문명이 혼돈일까, 아니면 코로나로 인해 벌어진 현 사태가 혼돈일까?

코로나 이전의 문명이 혼돈이라면 코로나는 현 문명의 혼돈을 뚫고 있는 하나의 구멍이다. 


코로나가 문명의 혼돈을 뚫는 하나의 구멍이라면 다른 구멍은 무엇일까.  코로나 말고도 다른 위기와 기회를 겪은 후에야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외에도 사이보그나 유전자가위(크리스퍼)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코로나 자체가 혼돈이라면 코로나에 7개의 구멍을 뚫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에는 구멍이 없다. 코로나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백신 개발일 것이다. 현재 개발된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백신은 코로나를 뚫는 첫 번째 구멍일 것이다. 그러나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감염되는 돌파감염이 등장했다. 


델타 변이나 람다 변이가 바로 그것이다. 델타나 람다 변이를 막는 백신이 개발된다면 그것이 코로나를 뚫는 두 번째 구멍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의 변이와 그 변이에 면역항체를 형성하는 새로운 백신이 수차례 개발되었을 때 코로나는 비로소 멈추게 될 것이다.  7개의 구멍을 뚫는데 7일이 걸렸다. 어쩌면 코로나가 완전히 독감처럼 정복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년이 더 소요될 지도 모른다.


장자 말고도 혼돈에 대해 독창적인 이론을 확립한 학자가 있다.  바로 프랑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이다. 들뢰즈의 '이축·삼축론'을 적용하면 문명의 죽음과 코로나의 소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이축삼축론'은 초현대적인 혼돈적 문화 또는 혼돈적 질서의 문화, 즉 카오스모스(chaosmos) 문화를 보장하는 카오스 민중, 두뇌 민중, 다중적 민중의 새로운 문화 결정적 구조이다. 


3축은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검증과 예술적 관조의 결합'을 말하며, 이 3축에 대해 '철학에 대한 비철학, 과학에 대한 비과학, 예술에 대한 비예술'이라는 '2축'의 상호 부정을 통하여 문화가 균형있게 생성된다는 것이다.


들뢰즈의 이론을 적용한다면, 코러나 사태에 대해 과학적인 대처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코로나 사태에 대해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관조가 곁들여져야 한다. 철학은 인간의 정신을 다루고 예술은 감각의 구현을 통해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백신처방만으로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인류의 정신문명을 재점검해야 한다.  


원시 상태에서 현 문명에 이르기까지의 정신문명을 현재의 시점에서 철학적으로 재규명하고 새로운 정신적 지평을 열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예술적 관조까지 결합해야 3축이 완성될 것이다.  그 세 가지 축에 각 축의 상호부정을 더하면 카오스모스 문화와 문명이 탄생할 것이다.  이른바 '혼돈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혼돈에서 빠져나오는 혼돈 그 자체 질서로서의 카오스모스 문화가 카오스 민중의 사상문화적 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코로나 사태 외에도 기후위기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대륙별로 차이가 있지만 폭염과 가뭄 혹은 폭우로 인해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류문명은 현 상태가 위기인지 아니면 위기에 이은 더 큰 위기가 닥칠지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를 향한 문명의 칼끝이 먼저일 것인가, 아니면 문명을 향한 코로나의 칼끝이 먼저일 것인가를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연 전자라고 답변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유동식 교수가 우리 전통의 얼과 통하는 풍류신학을 형상화해 그린 그림. 사진 조현 기자출처 : 한겨레신문 /  100살 신학자 유동식 “우리의 혼 풍류도를 발현해 세계인을 열광케 하라”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979519.html#csidx42bbb84c724ccdf89cd19420dd6
유동식 교수가 우리 전통의 얼과 통하는 풍류신학을 형상화해 그린 그림. 
사진 조현 기자 / 출처 : 한겨레신문 / 100살 신학자 유동식 “우리의 혼 풍류도를 발현해 세계인을 열광케 하라” 



장자의 비유에서처럼  코로나가 일으킨 혼돈에 7개의 구멍을 뚫고 혼돈에 끝장을 낼지, 아니면 들뢰즈의 이축삼축론에 근거하여 새로운 카오스모스 문명이 탄생하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다만 코로나사테에 즈음하여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비롯하여 방탄소년단의 빌보드차트 7주 연속 1위 신기록 등 한류가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문화강국을 꿈꾸었던 김구 선생의 유언이 코로나사태를 전후로 하여 실현되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 지구상에서 한류가 굳건하게 전파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현재의 한류에 만족할 게 아니라  한국의 정신문명을 재조명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잃어버린 한국 고대사 문명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코로나의 칼끝이 문명의 몰락이 아닌 문명의 창조를 향하게 해야 한다.


들뢰즈는 과학적 점검 외에 예술적 감각을 더해야 한다고 했다. 한류는 예술의 장르이다. 한류가 음악 드라마 음식 영화 등 문화적인 각 부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그 저변에 흥(興)을 즐기는 '한국의 흥' 문화와 한국 고유의 '풍류도' 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델타 변이의 돌파감염을 막는 새로운 백신 개발과 한국의 정신문명에 더하여 흥과 풍류를 즐기는 한류의 예술성이 더해졌을 때  대한민국은 새로운 카오스모스 문명과 문화를 창출하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해 본다. (한겨레온 2021. 07. 23)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1-07-23 12:35:27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유니세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