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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니스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통일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연일 펴고 있다. 이 대표는 9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우리나라 부처가 17~18개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많다”면서 “여성가족부나 통일부 이런 것들은 없애자”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페이스북에 실은 글에서도 “대만에 통일부와 같은 조직이 있는가. 대륙위원회다. 


북한에서 통일부를 상대하는 조직이 ‘부’인가. (노동당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다”라고 주장했다. 12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여가부와 통일부는 특임부처”라며 “그 특별임무에 대한 평가를 할 때가 됐다”고 폐지론을 이어갔다. 한마디로 어이없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가 남북으로 분단돼 온갖 고통을 겪어온 민족의 비극과 안타까운 한반도 현실에 대해 얼마나 깊이 숙고했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조금이라도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 책임 있는 제1야당 대표로서 통일부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고,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나 철학 없이 국가중대사를 가볍게 언급하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분단 현실 외면한 가볍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비난 자초

통일부는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69년 만들어졌다. 분단된 남북의 통일된 미래를 준비하면서 남북 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대국민 통일관련 교육을 관장하는 일을 맡아왔다. 통일을 추진하는 현 단계에서는 한반도평화 증진방안 모색과 통일전략의 기획 등에 주력하면서, 통일 이후의 체제통합 시기에 대비해 민족발전 방향을 미리 준비하는 막중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통일부 폐지와 관련한 이 대표의 발언이 국민의힘 당론인지 묻고 싶다”며 “당론이라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 대표의 폐지 주장이 연일 이어지자 “통일부를 폐지하라는 부족한 역사의식과 사회인식에 대한 과시를 멈추시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도 12일 정례브리핑에서 “통일부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구현하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며, 남북간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앞당기기 위해 존속하는 것이 마땅하며 더 발전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이 대표의 뜬금없는 주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 주장은 일일이 논박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가 폐지 근거로 든 대만·북한에 통일부와 같은 정부 부처가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 적합성이 떨어지는 일방적 주장이다. 부처 형태가 아니더라도 두 나라 모두 분단상황을 관리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기구를 두고 있다.


노동당이 정부보다 위에 있는 북한에서 조평통이 노동당 산하 기관으로 출범한 것은 통일부가 정부 기관인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우 옛 서독 정부가 통일부에 해당하는 부처인 ‘내독관계성’을 설치·운영했다는 사실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준석 대표가 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배경에는 겉으론 ‘작은 정부론’을 내세웠지만 사고의 근저에 그의 편협하고 맹목적인 대북관과 통일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9년 6월 출판한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통일의 방법이 체제 우위를 통한 흡수통일 외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다”며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북한을 어떻게 우리 체제에 편입시킬 것인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결국 흡수통일이란 북한 체제를 지우는 것이고, 우리가 북한과 타협할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극단적인 인식을 갖고 북한을 바라볼 때 평화적인 대화·협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또 북한은 그런 생각을 가진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대할까. 이런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될 경우 한반도 평화는 과연 유지될 수가 있을까. 그의 논지를 따를 경우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 남북공동선언’ ‘10·4남북정상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 등 남북간에 맺은 평화적 합의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편협하고 극단적인 대북관·통일관에서 비롯된 폐지 주장

이 대표는 통일부 폐지 주장에 앞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다가 큰 비판과 저항에 직면했다. 정부조직 개편이란 중차대한 문제를 진지한 검토를 거친 당론도 아닌 당 대표 개인주장으로 계속 언급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잡음만 일으킬 뿐이다.

12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회담하며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치자 불과 100분 만에 번복하는 가벼운 처신까지 겹쳐 큰 분란이 일었다. 젊고 신선한 야당대표 등장에 반짝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국민들의 실망을 앞당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내일신문 2021.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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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20 17: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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