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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객원교수, 철학박사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국회의원에 입후보하여 유세장에서 연설할 때의 일이다. 상대 후보가 그를 이중 인격자라고 비방했다. “여러분, 이 링컨이란 후보는 도대체 몇 개의 얼굴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후보를 뽑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러자 링컨은 이렇게 응수했다. “저 분의 말이 얼마나 당치 않은지 여러분은 분명히 아시겠죠? 만일 제가 정말로 얼굴을 여럿 가졌다면 어딜 가나 항상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설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정치가이자 문필가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 역시 유머 감각이 비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든이 넘은 처칠이 어느 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의 바지 지퍼가 열려있는 것을 보고 한 여인이 말했다(망신을 주려는 의도가 약간 깔려 있었음은 물론이다). “어머, 바지 지퍼가 열려 있네요.” 그러자 처칠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죽은 새는 새장이 열려도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답니다.”

 

처칠의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그가 대중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자 한 부인이 말했다. “수상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이 많은 사람들이 수상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잖아요.” 처칠이 다소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가요? 하지만 만일 여기서 내 목을 매단다고 했다면 사람들이 아마 세 배는 더 모여들었을 겁니다.” 

 

미국 대통령 로날드 레이건이 구사했다는 유머도 꽤 많이 전해지는데, 이 중에서 두 편만 소개한다. 1981년 3월 그가 존 힝클리 주니어라는 청년에게서 저격당해 중상을 입었을 때의 일이다. 간호사들이 출혈을 멈추게 하려고 레이건의 몸을 만졌다. 레이건은 “낸시(레이건 대통령의 부인)에게 분명히 허락을 받고서 이러는 거요?"라고 말하여 간호사들을 웃겼다.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에 나섰을 때 민주당의 젊은 후보는 월터 먼데일이었다. 그가 레이건의 나이가 많다는 약점을 꼬집어 공격했다(당시 레이건의 나이는 이미 70대). “대통령님, 대통령님께서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레이건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의아하게 여긴 먼데일이 물었다. 그러자 레이건이 “당신이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라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유머 감각은 리더십에 대한 논의에서 가끔 들먹여진다. 탁월한 지도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전기에는 그들이 지녔던 유머 감각이 가끔 소개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유머 감각은 일종의 양념처럼 얘기될 뿐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지도자에게는 응당 근엄함과 체통이 있어야 한다는 문화가 지배적인 데서는 유머 감각이 경박스러움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탓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옛날의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유머 감각을 발휘한 예는 별로 전해지지 않는다. 언뜻 ‘오성(鰲城) 이항복(1556-1618)과 한음(漢陰) 이덕형( 1561-1613)의 일화’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고위급 정치인들 간의 소통이나 언쟁에서는 유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날을 세우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정치인’ 하면 유머를 떠올리기는 고사하고 웃던 입가에서도 웃음기가 싹 사라질 지경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물론 유머 감각만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문제가 쉽사리 풀리거나 심각한 현실이 일시에 달라질 수는 없다. 늘 막중한 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고심하는 정치인이나 높은 사람들에게 유머 감각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속내 모르는 사람의 한가한 요구사항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심각한 상황에 무슨 엉뚱한 유머 타령이냐는 반박인 것이다. 

 

하지만 나라 사정이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에 오히려 유머 감각이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든 링컨이나 처칠, 레이건의 경우도 꼭 한가로운 상황에서 유머 감각이 발휘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분명히 유머적 감성은 거칠고 팽팽한 긴장 상태를 완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적절히 발휘하면, 마치 빡빡하여 건조한 마찰음을 내며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사이에 윤활유를 한 두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난감한 사태에 처하거나 그런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정서가 부드러워진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할 때 ‘웃을 수 있는 존재’라는 특성을 주요 기준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충분히 수긍이 간다. 

 

유머 감각의 필요성이나 효과를 인정한다는 말이 그것이 하루아침에 길러진다는 뜻은 아니다. 유머 감각은 구사하는 사람의 유연한 사고력과 포용력, 관점의 너그러움이 고스란히 반영된 일종의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유머 감각을 갖추라는 요구는 의외로 까다로운 주문일 수 있고, 유머 감각을 타고 난 사람은 그 사실만으로도 큰 복을 받은 셈이 된다. 


아무튼 정치가나 각 분야의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 삭막한 현실에서 청량제 구실을 하는 유머 감각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상황이 요구할 때 유머 감각이 자연스레 발휘되도록 평소 마음가짐을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가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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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25 17: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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