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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 투기와 투자를 구분할 줄 아는 경제정책
  • 기사등록 2021-06-21 17:59:51
  • 기사수정 2021-06-21 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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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현재 경제 정책이 난맥상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투기'와 '투자'의 혼돈에 있는 것 같다. 경제를 잘 키우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투자를 북돋우고 투기가 경제를 뒤흔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대명제를 대놓고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투자와 투기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다 보니 투자는 위축시키고 투기는 부추기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기업경영과 주식시장을 먼저 살펴보자.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너도나도 자신을 투자자라고 표현한다. 개인투자자, 기관투자자, 펀드투자자, 투자자문사 등 모두 '투자'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주식 거래의 대부분은 투기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든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쇼트(short)'를 해서 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이것을 투자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가치는 미래를 위해 인력, 시설, 연구개발 등에 돈을 쓰며 조직적 역량을 발휘해야 올라간다. 이것이 투자이고 기업가치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발행하는 신주를 매입해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투자 행위의 일부다. 발행시장에서 벤처캐피털이나 개인이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투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유통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것은 투자가 아니다. 매입자가 지불한 돈이 기업에 들어가지 않고 주식의 전 소유주에게 넘어가는 '손바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투기가 기본인 주식은 장려,  투자적 성격인 재개발은 억제
거꾸로 된 경제정책 판쳐,  '투자 공화국'으로 돌려놓아야

             


현재 기업 관련 정책은 투자 주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하면서 투기 주체에게는 갈수록 많은 권한을 준다. 감사 선임에 대해 대주주 투표권을 3%로 제한하는 '기업규제 3법'이 대표적이다. 국내 대주주들은 대부분 '대주주 경영자'로서 투자를 고민하고 집행하는 일을 담당한다. 반면 이 규제로 인해 더 큰 힘을 행사할 헤지펀드 등은 기본적으로 투기 세력이다. 그런데 정책은 '나쁜' 대주주를 '착한' 투기꾼이 강력히 통제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는 사이비 마르크스주의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세상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 구도로 보고 자본가를 억누르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투기와 투자를 명확히 구분했다. 자본가의 '착취'를 비판했지만 생산력 발전에 대한 기여를 인정했다. 대신 세상을 가장 나쁘게 만드는 집단을 금융가로 봤다. 

'기생충'이라고 표현했고 "피를 빨아 먹어 (…) 생산력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재벌을 '개혁'한다며 금융 기생충을 우대해주는 마르크스조차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주식시장과 달리 투기를 지나치게 죄악시하고 강력한 규제를 남발하는 과정에서 투자조차 투기로 몰아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 새 아파트를 짓거나 재개발하는 것은 투자 행위다. 미래에 돈을 벌기 위해 인력과 자본을 들여서 제품을 공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개발에 대해선 투기 딱지를 붙인다. 오래된 아파트를 갖고 있던 '부자'들이 재개발로 가만히 앉아 더 부자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개발의 주체는 건설회사이지, 아파트 주인이 아니다.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 주인이 돈을 벌지만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집도 공급된다. 

아파트 주인이 돈을 버는 것이 배가 아파 재개발을 투기 취급하는 것은 산업단지를 건설할 때 땅 주인이 떼돈 버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단지 조성을 투기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러 캠프에서 정책 공약을 발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투기와 투자를 제대로 구분하는 데서 출발해 한국을 '투자 공화국'으로 재도약시키겠다는 공약과 정책이 그중에 포함되면 좋을 것 같다. (매일경제 2021.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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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21 17: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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