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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대학교 총장
          


   11세기에 처음 근대적 대학이 이탈리아 볼로냐에 생겼을 때는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제공되지 않았다. 아직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출현하기 전이어서 책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없었고, 그나마 있는 책은 대부분 필사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종이도 귀하던 시절이라 종이를 아끼려고 책을 필사할 땐 단어 사이를 띄우지 않고 내리썼다. 엄청나게 긴 단어 하나로 이뤄진 듯한 책이라니. 학교에서는 이걸 읽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인쇄 혁명은 교육 현장을 경천동지 수준으로 바꿨다. 이제 수업시간에 교사가 읽어주는 책 내용을 받아 적지 않아도, 온갖 종류의 잘 만들어진 교과서가 제공된다. 전자책에 무시무시한 분량의 책을 넣고 다니는 요즘 학생들은, 인류가 여기에 오기까지 헤쳐나가야 했던 그 기나긴 여정을 상상하기 어렵다. 신기한 것은, 교사가 읽어주고 학생은 받아 적는 천 년 전의 교육 방식이, 지식 검색이 일상화된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갑작스러운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교육이 뭔지를 국가 수준에서 처음 경험했다. 이제 우리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의 제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학습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다.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다니. 인쇄된 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세계였을 중세 학생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요즘 하이브리드 학습이나 블렌디드 러닝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을 어떻게 잘 혼합한다는 건지 명쾌하지 않다. 잘 만들어진 동영상 강의를, 마치 인쇄된 교과서를 제공하듯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건 어떨까? 이미 EBS 등에서 하고 있지만, 학교 차원에서도 못할 이유가 없다. 

필요하다면 여러 명의 교사가 힘을 합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핀란드가 2016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현상 기반 학습에선 복수의 교과목 교사가 매년 한 가지 과목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운영한다. EBS나 온라인 학교의 동영상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MOOC는 학교의 보완자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학생들이 수업 동영상을 보기 전에 교사는 이끄는 질문이나 문제를 던지자. 집에서 해당 동영상을 보고 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말이다. 학생은 이끄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의 깊게 동영상 수업을 보게 된다. 요즘 강조되는 자기 주도 학습이 일어날 수밖에.

수업시간엔 그 질문에 대해 학생들이 가져온 답을 가지고 토론하고 논쟁한다. 좀 더 깊이 있는 문제도 다룬다. 몇 주 동안 수행할 작은 프로젝트를 주고, 수업 시간에 이걸 수행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물론 관련 동영상 강의를 주의 깊게 보고 학습해야 할 수 있도록 잘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작년에 사용했던 강의 동영상을 올해 재탕했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자. 작년에 제공한 교과서를 오래 다시 쓴다고 뭐라 안 하지 않나. 해가 갈수록 더 세련되어 갈 동영상에 지식 전달을 맡기고, 수업은 '이해와 체득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바꾸자. 이건 재탕이 불가능하다. 논쟁을 통해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의 연습을 하고, 토론을 통해 소통 능력을 기르고, 프로젝트와 문제 해결을 통해 '해본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도록 하자.

팬데믹 상황이 또 온다면 대면 수업을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대치하면 된다. 지난 1년여간 '줌' 등을 활용한 실시간 온라인 수업도 상당히 이뤄졌지만, 대부분 일방향 지식 전달 수업이다 보니 쌍방향에 최적화된 실시간 온라인 방식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팬데믹이 혹시 또 오더라도 배움의 과정엔 아무런 차질이 없도록 우리 교육도 팬데믹 백신을 맞자. 이번 기회에 팬데믹에서 자유로운 교육(pandemic-proof education) 시스템을 갖춘다면, 우린 큰 걸 하나 얻는 것 아닐까. (매일경제 2021.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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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07 18: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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