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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 / 혜성처럼 등장하는 정치 천재, 과연 가능할까?
  • 기사등록 2021-06-01 12:55:03
  • 기사수정 2021-06-01 12: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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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미국에서 공공부문의 유능한 리더가 민간부문으로 옮겨간 경우와 민간부문의 유능한 리더가 공공부문으로 옮겨간 경우를 비교해서 누가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는가를 조사했습니다. 민간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옮겨간 리더가 상대적으로 성과가 더 나빴습니다. 정치는 역시 쉽지 않습니다. 기업인 출신 미국 정치인도 성과가 형편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으니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기업인 출신 전임 대통령의 실패에 비하면 성공이 돋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도 단임으로 끝났으니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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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제가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선거에 패배하고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미국 국민 37%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트럼프가 지시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의사당에 진입하여 사람이 죽는 난동을 부릴 수도 있을 정도로 트럼프에 열광합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트럼프가 재선에 패했어도 신당을 창당하면 공화당 지지자의 2/3가 옮겨갈거라고합니다. 정치경험이 없는 신참이 이 정도의 지속적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트럼피즘이라는 정치현상은 미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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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민간부문에서 성공한 사람이 단번에 성공한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트럼프가 과연 미국에 도움이 되는 정치인인지는 의문이지만 민주당은 다시 그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까봐 걱정하고 있으니 트럼프에 열광하는 ‘트럼피즘’이라는 단어가 나올만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죽일 놈 죽일 놈하지만 정치는 그 죽일 놈의 정치인이 해야 합니다. 민간부문의 인재가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오랜 경험을 쌓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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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센트루이스 시의 시장을 세 번인가 역임했던 세르반테스라는 사람은 민간경영인 출신인데 ‘공공부문에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하겠다’라는 선거공약을 걸고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항상 정치에 불만인 유권자는 이런 구호에 솔깃하기 마련입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유명해져서 백악관에 초청도 받을 정도였는데 퇴임 후 고백을 했습니다. ‘민간경영기법은 공공부문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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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민간부문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의해 작동합니다. 따라서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일찍부터 좋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쌓는게 좋습니다. 혜성처럼 나타나는 선진국의 젊은 정치인은 사실 학창시절부터 정치경험을 쌓은 노련한 정치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을 예를 들면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부터 이미 교내에서 리더로서 훈련을 쌓고 시장, 시의회의원, 주하원의원, 주상원의원, 연방하원의원, 연방상원의원, 주지사 등의 경험을 통해 정치인으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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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 크다보니 우리는 정치인 출신이 아닌 민간부문에서 참신한 인재를 영입하여 수혈 받으면 환호합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의 새로운 인재 영입을 보면 하나 같이 나름 괜찮은 인재지만 한결 같이 정치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점이 인기를 끄는 것 같지만 제가 보기엔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아무리 죽일 놈 죽일 놈하지만 정치는 경험을 쌓지 않으면 좋은 정치인이 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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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영역은 기업의 영역과는 매우 다릅니다. 정치 영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질도 중요합니다. 뱃장도 있어야 하고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성격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세상과 인간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이 있어야 하고 특히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성을 간파해야합니다. 훌륭한 정치인은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성을 넘어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은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성을 악용할 궁리만 합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정치적으로는 틀린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문제되지 않은 행동이 정치적으로는 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정치인이 하면 칭송 받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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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치가 우리를 절망하게 할지라도 혜성처럼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줄 비정치인 출신 수퍼맨은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죽일 놈 죽일 놈 하지만 제가 겪어본 정치인 중에는 좋은 정치인이 제법 있습니다. 말로는 좋은 정치인을 원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매력 있는 정치인, 무언가 끌리는 정치인을 원합니다. 우리가 연애할 때 나쁜 남자, 나쁜 여자에 끌리듯이 국민은 나쁜 정치인에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선거는 연애상대를 고르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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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마치 무슨 쇼를 하듯, 마치 이벤트를 기획하듯 민간부문에서 참신한 인재를 영입하면 젊은 시절부터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는 인재는 아예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됩니다. 좋은 정치인은 젊을 때부터 키워야합니다. 정치에 대해 고민도 제대로 안해본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 될리는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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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철수라는 훌륭한 기업인이 정치판에서 오랜 기간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안철수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지지율은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정치를 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남아 있었다면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민의 어른으로 나이를 먹어갔을 것입니다. 그가 국회의원을 거치고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정치 수업을 쌓았더라면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정치인 자리에 도전하면서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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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가 구축된 나라는 정치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좋은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가 정치를 기피하지 않는 환경이 마련되어야합니다. 정치가 진흙탕이 되면 우수한 인재는 더욱 정치를 기피하고 정치는 국민의 외면을 받고 정치는 정치모리배만의 리그가 됩니다. 정치인이 정치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수록 훌륭한 인재는 정치판을 떠납니다. 

정치인이 진흙탕으로 싸우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우수한 인재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정치활동정화법’을 제정하는데 기존 정치인과 군부 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악법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정화가 아닌 진실로 정치를 깨끗하게 증류할 수 있는 정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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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깨끗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밥사주고 돈 나누어주는 행위가 근절되었습니다. 신고하면 거액의 포상금이 지불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가 우리 기업인들이 사업하기엔 제일 편했어요. 돈달라고 하지 않았거든요. 정경유착이 확실하게 끊어졌습니다”라고 어떤 기업인이 말했습니다. 과거에는 선거 때 돈을 뿌려도 별 문제가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는 엄한 처벌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조심하다보니 선거가 끝난 뒤에 ‘선거 치르고 돈이 남았어’라고 말할 정도로 선거판에서 돈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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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을 정화하는데 법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윤리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분위기입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할 때마다 뒷돈을 집어주어야하는 사회라면 정치판이 나홀로 정화될 수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깨끗해져야 정치판도 깨끗해집니다. 정치인은 국민의 거울이고 정치판은 사회의 거울입니다. 연기적 세상에서 정치판만이 세상과 유리되어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인 또한 다른 사람과 절연된 독자적 생물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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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2일 여론조사에 의하면 윤석열과 이재명의 양강 구도에서 윤석열 전총장의 승리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23.5%나 됩니다. 민주당의 텃밭에서도 이 정도면 윤석열 전총장이 나름 공정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상당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총장에 대한 지지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 기초한 거품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윤총장 가족에 대한 수사에 있어서는 솜사탕이었기에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국민이 과연 윤총장을 계속 지지할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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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총장이 최근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과외를 받는다는 기사가 자주 나옵니다. 벼락과외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벼락과외로 맡아서는 안되는 자리가 아닐까요? 죽일 놈 죽일 놈 하지만 죽일 놈의 정치인이 대통령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정치가 공부로 가능하다면 학자가 대통령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현실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면 정치인이 대통령에 가장 적합합니다. 경험을 쌓지 않고도 정치에 성공하는 혜성과 같은 정치천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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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국민의 힘 당 비대위원장을 모두 역임한 김종인 위원장이 SBS와 대담한 내용은 꼭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오랫동안 내가 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을 하고 나라의 변화를 잘 깨닫고 국민의 정서가 어떻게 변하는지 이런 것에 대한 오랫동안 준비를 거쳐서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이 이러하니까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해나가야겠다 이게 각 분야가 다 그러잖아요. 

외교, 안보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또 국제사회의 이런 현상들. 그런 것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서 대통령이 되어도 대통령 하기가 힘든 건데 그러한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어떠한 순간적인 소위 여론 형성에 따라서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볼 것 같으면 별로 성공의 가능성이 나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지금 우리나라에 그러면 왜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이 없느냐. 그걸 한번 냉정하게 검토를 해 보면 자연적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은 뭐를 갖춰야 할 것이냐는 것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요.” 김종인 위원장의 말입니다. 다음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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