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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대 석좌교수, 전 대법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하면 잔인하게 자식·타인을 죽이는
극단적 선택에 기울어져야 할 사람들의 주의 흩어질까 우려
자살은 자살이라고 말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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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을 흔히 듣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바꾸어 부르는 것에 적지 않은 의문을 느낀다. 좋다, 자살이 극단적 선택에 해당한다고 해보자.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은 다 자살인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저 깊은 속에 어쩔 수 없이 자리하고 있는 그 악행의 씨앗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발현되면, 남을 죽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자식까지 죽인다. 그것은 철모르는 여자가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한 결과로 세상 밖으로 밀려나온 갓난아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 목을 조르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정인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대법원에서 일하면서 새삼 느낀 것 중 하나는 사람이 자기 뜻을 좇아 계획적으로 저지르는 악행은 실로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런 무자비한 천인공노할 짓이야말로 사람이 선택할 여지가 있는 행동의 스펙트럼에서 저 음험한 끝부분, 그 가장 극단에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살인행위의 선택은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상대방이 눈에 거슬린다든가 비위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든가 하는 등의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기하여서도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도 극단적인 고통을 준다.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의 고등학교에서 총을 난사하여 13명을 죽게 하고 24명을 다치게 한 유명한 `콜럼바인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어보면 그 정신적 고통이 절절히 배어난다.

그리고 자기든 남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도 극단적 선택은 얼마든지 있다. 일생을 두고 근근이 모아 저축한 돈을 온갖 감언이설로 속여 훑어내어서 하룻밤의 환락에 물 쓰듯 써 없애는 것도 마찬가지로 극단적 선택이 아닐까? 나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게 되면, 자살이 아닌 극단적 선택, 자살보다 더욱 빈번하고 잔인하게 타인을 향하여 행하여지는 극단적 선택에 대하여 예민하게 기울어져야 할 사람들의 주의가 흩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자살은 예외 없이 극단적 선택인가? 쉬운 예로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의 문제는 일찍부터 진지하게 논의되어 왔다. 물론 이른바 자의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 즉 죽으려는 사람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의사의 도움 아래 행하여지는 것만이 논의의 대상이다. 

이는 주로 이를 돕는 의사를 면책할 것인가라는 측면을 다루지만(우리 형법은 자살방조죄를 정하고 있다), 삶의 막바지라고는 하여도 아직 살아 있음에 틀림없는 본인이 참기 어려운 격심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또는 끊도록 하는 것이므로 자살임은 물론이다. 

그것이 스위스나 캐나다, 벨기에 같은 나라에서는 합법화되어 있고, 며칠 전에는 스페인도 그렇게 입법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자살이라고 해도 그것이 언제나 있어서는 안 될 `극단적`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일정한 경우에 처하여서는 적어도 일부의 사람에게는 수긍될 수도 있는 선택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 대신에 자살은 그대로 자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굳이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 서울특별시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것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에 비추어 보아도 이름을 제대로 선택하고 말을 바로 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매일경제 2021. 0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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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3-26 18: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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