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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이민자가 아닌가?-영화 '미나리'를 보고
  • 기사등록 2021-03-17 17:25:22
  • 기사수정 2021-03-17 17: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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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교수,영화평론가  




영화 <미나리>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펄 벅의 소설 <대지>였다. 1931년 미국의 작가 펄 벅이 중국 난징에서 집필한 소설 <대지>는 193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38년엔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중국인을 주인공 삼아 ‘땅’에 대한 애착과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1937년 영화화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빅터 플레밍과 시드니 프랭클린이 공동으로 감독한 이 작품은 주요 배역을 모두 백인으로 바꾸어 연출했다. 화이트 워싱을 한 것이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단순 화이트 워싱 정도가 아니라 문화적 점유도 심각하다.


<민스트럴 쇼>에서 과장된 흑인 분장을 한 게 인종차별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면, 영화 <대지>도 끼워 넣어야 할 듯 싶다. 백인들이 변발처럼 머리를 밀고, 검은 가발을 쓴 채 영어를 하면서 중국인인 척하니 말이다. 심지어 주요 배역은 다 백인이지만 조연이나 단역은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이 맡았다. 그야말로 차별의 역사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인 이민자들이 한국어 대사를 많이 해서, 미국인들이 투자하고 배급한 영화 <미나리>가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 골든 글로브 사태는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스꽝스럽고 모멸적인 일일 게 명백하다. 마치 중국인 분장을 하고 영어 대사를 하는 백인을 이상하게 보지 못했던 1937년도처럼 한국인 미국 이민자 가족이 가족끼리 한국어를 하는 걸 외국어라며 차별한 2021년식 코미디인 셈이다.


차별적 요소를 차치하고도 소설 <대지>와 영화 <미나리>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이를테면 토지 서사, 개척 서사라고 부를 수 있을 서사적 공통 DNA가 두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낯선 곳에 가서 땅을 일구고, 그 땅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꾼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야말로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즐겨왔던 소재이기도 하다.


소설 <대지>에는 메뚜기떼에 의해 수확기 곡물들이 속절없이 파괴되는 걸 지켜보는 장면이 있다. 이 메뚜기떼는 영화 <미나리>에서 화재(火災)로 변주된다. 천재지변이나 화마(火魔) 같은 사고는 낯선 땅을 개척해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변수이자 장애이다. 100년 전 무렵, 펄 벅이 바라본 중국인들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화재처럼, 화재나 천재지변은 불현듯 삶을 급습해 근간을 흔든다.


영화가 일반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난 이후 <미나리>를 두고 이민자의 이야기다, 그냥 가족 이야기다라며 소소한 의견 차이들이 있는 듯싶다. 그런데 꼭 이민을 가야 이민자인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 다 이민자이다. 내 몫을 제대로 일구어내지 못한다면 모국이라 할지라도 떠돌 수밖에 없다. 우리가 취업에 애쓰고,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정착의 안정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진학, 취업, 내 집 마련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미나리>의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 말마따나 매우 보편적이다. 낯선 언어와 낯선 얼굴이 가득한 낯선 땅에 가지 않더라도 우린 모두 조금쯤은 이민자나 망명자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영화 <미나리>를 보다 보면 아버지, 남편 스티븐 연과 엄마, 아내 한예리의 불안한 눈빛을 주목하게 된다. 뿌린 씨앗을 거둬 성공하고 싶은 남편과 비록 꿈은 없더라도 안정된 삶을 원하는 아내의 모습 말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더라도 남편 제우스는 거듭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사고를 친다. 반면 아내인 헤라는 질투하고, 사고를 수습하고, 안정을 도모한다. <미나리>에서 보여 준 두 부부, 가족의 모습은 인류가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이후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겪어왔던 갈등, 고민, 불안이기도 하다.


<미나리>가 훌륭하다면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를 1980년대, 미국에 이민 온, 한 가족의 모습으로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그게 예술가의 능력이고 가치다. 어느 나라 말이냐가 기준이 되는 것 자체가 비문명적이고 미개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2021.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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