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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얀마 군대의 학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2020년 11월 총선 결과에 군부가 불복,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켰죠. 정치 지도자들을 구금하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 벌써 시민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겨우 이어오던 민주체제의 붕괴, 군부 재집권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정부는 쿠데타가 일어난 2월 초, 군부를 비난하고 경제 조치에 나섰습니다. 영국 등 서방국가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도 지난 2일 회의를 열고 정치 지도자 석방과 사태 해결을 요구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우려를 갖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공식 입장은 유보하고 있죠. 한국 정부도 당장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고 강력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거리의 군인들, 불을 뿜는 총구, 살벌한 총검, 장갑차의 굉음, 울부짖는 시민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광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의 희생으로 자랐습니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의 정신을 승계하고 있다고 기회가 날 때마다 강조해왔죠. 이것이 정치적 수사일 뿐이었다고 고백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얀마판 광주항쟁에 대한 확고한 대응을 취해야 합니다. 이는 더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언제 느끼나요. 일본에 축구를 이기는 나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삼성 휴대폰 수출로 자위할 수도 없죠. 우리가 추구하는 그 무엇이 국제적 공감을 받을 때 우리는 우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끝없이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의 잰걸음이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승만을 이겼고, 박정희를 견뎌냈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를 물리치고, 박근혜도 쫓아냈습니다. 


우리의 계속되는 투쟁이야말로 한국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투쟁이 자화자찬으로, 국수적 만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의 광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미얀마 민중과의 연대가 시급합니다. 외교적으로도 중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세안과 한국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신남방정책을 공식화했습니다. 강대국에 끌려다니기만 하던 외교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지도국이 되겠다는 청사진이었죠. 이런 면에서 일본은 벌써 우리를 멀리 앞서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지도력은 경제력 중심입니다. 한국은 달라야 합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미얀마 군부에 단호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한국이 미얀마 민중과 함께 있음을, 이들의 가치와 미래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전략적 고려도 필요합니다. 중국은 반서구 연대 확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보편적 인권 등을 서구의 것이라 규정하고 중국의 가치를 대안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미얀마 군부 지지는 이런 문명적 대결의 일부죠. 자기 안방처럼 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요. 


한국은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만은 없습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지금도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성장하면서 G2의 싸움은 더욱 거칠어질 테죠. 한국도 휘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중국과 유대관계를 이루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 중국 반대편에 서기 쉽겠죠. 아시아에 민주세력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전략적 미래도 그만큼 밝아질 겁니다.


군부 학살을 강력히 규탄하고 군 지도자와 친·인척들, 이들의 기업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작고 상징적인 조치라도 해야 합니다. 아세안과 공조를 이루고 미국과도 보조를 맞춰 국제적 노력도 이끌어야겠죠. 한국 대사관 앞에 무릎을 꿇고 한국말로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살립시다.(경향신문 2021.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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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3-05 16: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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