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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디지털 테크 부장





  결국 예상했던 역풍이 시작됐다. 네이버나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같은 디지털테크 기업 실적 발표가 그들에겐 충분한 명분을 줬다. 아니 놓칠 수 없는 시장이 열렸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이익을 내고 있었다고?` 언젠가는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벼르고 있던 그들이 확신을 가질 만했다. 소비자와 영세 자영업자 보호를 내세우면 명분은 충분하다.

관료와 정치인들은 예상대로 반응했다. 숫자가 말해줬다. 10년 전만 해도 24조원에 불과했던 한국 온라인 상거래 시장 규모가 지난해 160조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산업 내 위상이 달라졌다. 보수적인 금융시장에서 성장세는 더욱 무섭다. 카카오 페이와 같은 전자금융 결제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섰다. 주식시장에서도 네이버는 시가총액 64조원으로 4위를, 카카오는 45조원으로 9위에 올라섰다. 기아, LG전자, 포스코, SK텔레콤을 10위권 밖으로 밀어냈다.

`여기 우리 건데….` 정치권에서 이익 공유, 즉 나눠 갖자는 압박을 시작했다. 왠지 모를 거액의 기부 소식이 들리고, 일부 회사에선 거액의 성과급 나눠주기가 이어졌다. 국회에선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본격화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부처 간 이권 다툼에 국회 상임위원회가 대리전에 나선 형국이다. 소속 상임위 정치인을 통해 `청부입법`도 속출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이 대표적이다. 당초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법안을 준비했다. 급성장하는 플랫폼 산업에 대한 명확한 규제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방송통신위원회가 끼어들었다. 

이러다간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권한을 완전히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속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혜숙 의원을 통해 발의했다. 갑자기 추월당한 공정위는 서둘러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만들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공정위와 방통위라는 두 정부부처의 규제 권한 다툼에 소속 상임위인 정무위와 과방위가 서로 다투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 과정이다. 여기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수진 의원까지 법안을 내면서 규제 권한을 다투는 상임위가 3개로 늘었다. 속내는 뻔하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방통위는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빅데이터와 개인정보 보호 관련 업무가 새로 만들어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넘어가면서 업무가 더욱 축소됐기 때문에 어떻게든 규제 권한을 가져와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담당국을 하나 신설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가 커질 수 있는 분야라서 내부 조직을 키우고, 길게 보면 산하기관 신설과 퇴임 후 유관 업무 취업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충돌한 `전자금융거래법`도 똑같다. 급성장한 플랫폼 기업을 통한 결제 정보를 누가 가져가느냐를 놓고 한은이 급기야 금융위를 향해 `빅브러더 법`을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금융위는 국회 정무위 소속 윤관석 의원을 통해, 한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주영 의원을 통해 각자 유리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속도전 양상으로 입법 경쟁이 펼쳐지면서 정작 법안 자체의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있다. 법 제정을 서두르는 이유가 국민을 위해 시급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 부처보다 법안을 먼저 마련해 규제 권한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업계 의견 청취 과정도 급조되고 웬만한 조항은 시행령이나 시행세칙으로 넘기기 일쑤다. 

업계 관계자는 "하나하나가 실제 경영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인데 나중에 시행령이나 세칙으로 정하겠다고 미뤄놓고 있어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청부입법 전쟁은 파고들수록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 또한 정권 말 레임덕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엔 미안하지 않은가. (매일경제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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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2-19 16: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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